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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3월13일:최은희. 신상옥, 1986년 북한 탈출

김은주 기자

김은주 기자

  • 승인 2016-03-12 19:02

지난 1월 24일 오랫동안 잊힌 원로 여배우의 이름이 인터넷 뉴스에 올랐다.

최은희씨와 그의 남편이었으며 영화감독인 신상옥씨에 대한 기사였다.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지시로 납북됐다 8년만에 탈출한 기록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들과 독재자(The Lovers and the Despot)'가 미국 독립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1월 22일 공개됐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는 납북과정과 북한에서의 생활, 탈북을 생생하게 담고있을 뿐만아니라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육성도 들을 수 있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30년 전인 1986년 ‘오늘’이 있었기에 탄생될 수 있었다.

두 번의 납치와 두 번의 탈출. 영화배우 최은희의 일생은 한국 근현사의 비극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그녀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빨간 마후라’ 등 불후의 영화로 1950~70년대 최고의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며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삶은 신산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북한 인민군에게 납치돼 청천간 인근까지 끌려갔다가 고초를 겪으면서도 몇몇 사람들과 함께 탈출하는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납치사건이었다.

그리고 1978년 1월 14일 최은희는 당시 교장으로 있던 안양예고의 재정 회복을 위해 방문한 홍콩에서 홍콩재벌을 가장한 북한 공작원이 합작작품 및 지원을 의논하고 싶다고 꾀어 다시 납치됐다. 최은희와 이혼한 상태였던 영화감독 신상옥도 한 때 부부였다는 책임감에 홍콩으로 찾아가 수소문하며 샅샅이 뒤지다가 결국 같은 해 7월 18일 납북되고 말았다. 당시 이 납치사건을 두고 전태일 분신사건 영화를 계획했던 신상옥 감독과 박정희 정권의 불화로 신 감독의 자진 북한 밀입국이냐 납북이냐 하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북한의 두 번째 최은희 납치는 성공적이었다.

최은희와 신상옥은 북한에서 환대를 받으며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지로 신필름 영화촬영소를 차리게 됐고 ‘소금’ ‘춘향전’ ‘불가사리’ 등을 제작해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감독상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은희와 신상옥은 북한의 체제에 동조하며 한껏 몸을 낮추고 탈북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마침 그 날이 1986년 3월 13일 이었다.

영화 촬영과 관련해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하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 교도통신 순회 특파원 에노키 아키라 기자에게 점심을 먹자고 불러냈다. 북한 감시원들의 감시를 따돌리고 에노키 기자가 탄 택시에 동승해 빈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방향을 틀어 망명에 성공했다. 그들이 최종 망명지로 선택한 곳이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말들이 있었다. 군사정권에 반했던 신상옥 감독은 남북 어느 곳에서도 편하지 못했다. 결국 두 조국을 버리고 미국인의 길을 택한 이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가 됐다./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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