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 영화 '달콤한 인생' 오마주 숨겨져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KBS 교양국이 제작한 국내 첫 극사실주의 팩추얼드라마 '임진왜란 1592'가 거둔 의외의 성공에 제작진도 놀라워하고 있다.
시청률조사회사인 닐슨코리아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일 방송된 1편이 9.2%의 시청률 기록한 데 이어 8일 2편 8.1%, 9일 3편 7.6%를 기록했다.
영화 이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추석 연휴 중인 15~17일 재방송 시청률도 7.4%, 6.6%, 8.0%를 기록했다.
KBS 교양국의 기존 역사·과학 다큐멘터리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인 데다 명절용 예능 프로그램을 능가하는 인기였다. 인터넷상에서의 화제성과 시청자들의 실제 관심은 그 이상이다.
'임진왜란 1592'는 예상치 못한 성공만큼이나 제작과정에서 예측불허의 반전이 많았다.
1~3편의 대본과 연출을 맡은 김한솔 PD는 최근 연합뉴스에 '임진왜란 1592' 제작과정의 숨은 얘기를 털어놨다.
◇ 김지운 감독에 대한 오마주가?
'임진왜란 1592'에 관한 비화 중 가장 눈길을 끈 건 뜻밖에도 작품 속에 아무도 몰랐던 국산 명품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먼 소리긴 먼 소리여 인생 구멍 나는 소리지"
2편 당포해전에서 근접전을 펼치는 거북선 등판에 칼이 잔뜩 꽂힌 것도 모르고 뛰어내린 일본군들의 비명이 들리자 아래 격군실(노 젓는 공간)에서 이게 무슨 소리냐며 궁금해 한다. 이때 귀선(龜船·거북선) 돌격장 이기남(이철민 분)이 하는 말이다.
이 대사는 김지운 감독의 마니아들을 낳은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빌려온 것이다.
복수하러 왔던 주인공 김실장(이병헌)은 아이스링크에서 만난 백사장(황정민)의 칼에 찔리지만 총으로 제압하고 빠져나온다. 총소리를 들은 택시기사가 뭔가 터지는 소리 못 들었냐고 묻자 쿨하게 답한다.
"인생 빵꾸 나는 소리예요"
이기남의 대사는 김실장의 대사를 살짝 비튼 것이다.
김한솔 PD는 원래 영화광으로 영화 대사를 외우고 기억하길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김지운 감독과 '달콤한 인생'을 특별히 좋아했다. 김 감독의 신작 '밀정'은 요즘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김 PD는 "연출자로서 좋아하는 마음을 표시한 오마주"라고 했다. 오마주는 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뜻한다.
◇ 대본, 전문 작가에게 맡기려 했다
김한솔 PD는 '임진왜란 1592'의 대본을 직접 썼다. '역사스페셜', '추적 60분' 등을 연출해온 다큐멘터리 전문 연출자지만, 드라마 대본 작업에는 아마추어인데 가능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몇 년 전 작고하신 김 PD의 아버지는 신문기자이자 시인이었다.
'임진왜란 1592'의 성공에는 탄탄한 대본도 한몫을 했다는 평가인데, 여기에는 김 PD의 성실성이나 치열함 외에 숨은 작가적 재능도 발휘된 것이다.
원래는 '임진왜란 1592' 대본을 전문적인 드라마 작가에게 맡기려 했으나 일반 드라마와 팩추얼드라마의 작법이 달라 직접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반 드라마 대본은 중간중간 픽션(허구)을 많이 가미하는 반면 팩추얼드라마의 대본은 픽션을 최대한 배제한 채 나열된 팩트(역사적 사실)만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방식으로 쓴다.
김 PD는 '임진왜란 1592' 대본을 쓰면서 228번이나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나열된 팩트만으로 스토리를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막히는데 작가들은 픽션을 가미해 헤쳐나가지만 저는 다시 썼습니다. 징검다리가 없으면 다시 쓰고 다시 쓰고 하다 보니 대본이 많아졌죠."
◇ 임진왜란, 더 이상 할 게 없었다…새로운 장르로 접근
'임진왜란 1592'의 기획에는 사실 특별할 게 없다. 임진왜란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이 있거나, 팩추얼드라마에 대한 특별한 열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KBS 교양국 기획회의에서 임진왜란을 다루자는 결정이 났을 때 오랫동안 역사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온 박성주, 김한솔 PD는 사실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은 드라마로, 영화로, 다큐멘터리 소재로 워낙 많이 다뤄진 탓에 새로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으로 뭘 또 하나 했었죠. 새로운 유물이나 유적지가 발견된 것도 아니고…" 김 PD의 얘기다.
그러다 찾아낸 길이 새로운 장르로 접근해 보자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팩추얼드라마로 가려고 했던 게 아니고 나중에 생각해 낸 일종의 타개책이었죠."
진부해진 소재를 연출로써 극복해보려는 시도였는데, 이 새로운 시도가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우연한 시도가 역사에 새로운 길을 만든 사례는 많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결합한 팩추얼드라마는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미국 HBO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초한지'(2013) 등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해외에서는 보편화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임진왜란 1592'가 첫 시도다.
◇ 한중 합작은 2년 전 약속…일본 반발은 해프닝
KBS와 중국 CCTV가 합작한 '임진왜란 1592'는 국내에서는 지난 3일 방송의 날 특집으로 첫 방송 됐지만, 중국에서는 장정(長征) 승리 80주년 기념으로 오는 10월 말 방송 예정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 논란 속에서 한국과 중국의 공영 방송사가 대규모 역사물을 함께 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임진왜란 1592' 공동제작을 결정한 것은 2년 전 한류 열풍을 타고 드라마, 예능 등 많은 프로그램들에 대한 한중 합작이 이뤄질 때 자연스럽게 기획됐다.
"런닝맨, 나가수(나는 가수다) 등 한중 교류가 엄청나게 활발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기획된 겁니다. 이 작품은 호흡이 길어서 지금 방송되는 것이고. 그때는 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가 경색될지는 상상도 못 했죠."
합작에 일본이 빠진 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합작 분위기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 NHK는 나중에 임진왜란에 대한 한중 합작 사실을 알고는 "이건 반칙이다. 한중에서 일본을 이렇게 하는 건 안된다"며 반발했다고 한다.
김한솔 PD는 이에 대해 "사실 반발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해프닝이었다"며 "2014년 11월 광저우에서 열린 필름페스티벌에서 작품 기획안을 발표했는데 그때 NHK 측에서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임진왜란 1592'의 제작 기간은 2014년 8월 말부터 2년이지만 기획 단계를 뺀 순수 제작 기간은 1년 정도다.
abullapia@yna.co.k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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