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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러시아연해주 독립운동가 발자취 탐방(5)

강제이주 통한의 역사를 담다 "고려인문화센터"

금상진 기자

금상진 기자

  • 승인 2016-09-26 13:41
한중교류문화연구소(소장 이용우)가 주최하고 충남대공대화공과 동문회가 주관하는 러시아연해주 독립운동가 발자취 탐방(2016. 6. 21~25)다섯 번째로 소개할 내용은 우스리스크에 위치한 "고려인 문화산터"입니다. 우스리스크는 인구 20만의 도시로 고려인이 3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으로 도 불리는 이곳은 2004년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러시아 연방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 사진:한중교류문화연구소
▲ 사진:한중교류문화연구소


우리민독의 러시아 이주 통한의 역사가 담겨있는 “고려인문화센터”와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소개합니다.

이하 한중교류문화연구소 이용우 소장의 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 방향으로 112km거리에 우수리스크가 있다. 우수리스크 인구는 20만명인데 그중 고려인이 3만명 된다. 이 곳에는 "고려인 문화센터"는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이라고도 한다. 2004년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러시아 연방정부로 부터 승인을 받아 건립되었다. 고려인 역사박물관에서는 고려인의 이주역사를 볼 수 있으며 이야기를 씨앗, 불꽃, 들꽃, 평화 네 가지의 주제관으로 나누어져 전시되고 있다. 이 곳에는 연해주의 대표적인 항일 운동가 최재형선생이 있다. 최재형선생은 안중근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의 후원자이다. 러시아 한인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함경도에서 태어나 9살에 아버지를 따라 연해주로 이주해 왔다. 11살 때 부두에서 러시아 선장의 눈에 띄어 양아들이 되었고, 양엄마의 보살핌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한인으로서는 최초의 러시아 대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일주를 두번이나 하였고 많은 돈을 벌었다. 또한 그는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 초기 한인정착 시기에 통역가로서 활동하며 한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일을 해왔다. 1906년 그는 의병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대동공보사장, 권업회 회장 등을 지냈다. 최재형은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다른 독립운동가와 함께 학살당했다. 우수리스크에는 생애 마지막 살았던 초라한 집이 남아있다.

우수리스크에는 이상설 유허비가 있다. 이상설 선생은 충북 진천출신으로 1894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교수 겸 관장, 의정부 참찬 등을 역임한 이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을사5적을 처단하고 조약을 파기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1906년 북간도 용정에서 서전서숙을 세워 교육을 통한 국권회복운동을 펼치던 그는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열사, 이위종 선생과 함께 헤이그 밀사로 파견돼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다. 1917년 46세로 생을 마쳤는데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수이푼강에 뿌렸다. 강변에는 이상설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우수리스크에서 최재형 선생과 이상설 선생의 활동을 접하고 목슴을 내걸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한 그 분들을 그동안 알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영상:한중교류문화연구소 / 편집:중도일보 뉴미디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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