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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이른바 ‘가짜뉴스’와 명예공작의 죄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7-02-07 11:28

신문게재 2017-02-08 22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개념 전쟁이 은밀하다. 서울과 부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일본의 고위 관료들이 헛된 이름을 덮어씌우고 있다. 소녀상을 두고 ‘위안부 소녀상’이라 칭하던 데서 나아가 아예 ‘위안부상’이라고 부르댄다.

속셈은 빤하다. 잔혹한 전쟁범죄의 기록과 기억을 지워버리려는 간악한 처사다. 기시다 외무상과 스가 관방장관이 선두에 섰다. 명칭은 개념 전쟁의 수행 도구다. 초기 정보 전달자로서 언론은 기획하든 편의적이든 특정한 사건의 이름을 짓는 데 신중해야 한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라는 언론의 애먼 명칭은 해당 지역에 엄청난 유무형의 피해를 안겼다.

정박한 배를 치받은 삼성중공업이나 받혀서 기름을 쏟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건이라고 불려야 좋을 것이었다.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이른바 ‘가짜뉴스’(Fake News)라는 명칭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가짜뉴스 위력은 지난 미국 대선에서 두드러졌다. 트럼프 후보에게 이롭고 힐러리 후보를 헐뜯는 가짜뉴스가 소셜 미디어를 타고 확산됐다. 주로 페이스북과 구글이 가짜뉴스 유통망이었다. 트럼프와 절친한 푸틴의 러시아가 가짜뉴스 공급의 진원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가짜뉴스에 대한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의 반응이 언론사 뉴스에 대한 사용자들의 유사한 반응보다 더 활발하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패배한 힐러리 후보는 가짜뉴스에 맞서 미국 의회가 초당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페이스북과 구글은 가짜뉴스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가짜뉴스 신고를 용이하게 하고, 그들의 유통망에서 가짜뉴스 공급자들이 광고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짜뉴스 논란은 한국의 대통령선거 국면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한 때 유력한 여당 후보로 여겨졌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귀국 스무 날 만에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로 자신이 주창한 정치교체의 명분이 실종되었다고 주장했다. 자신과 가족, 유엔의 명예가 큰 상처를 받았다고도 말했다. 애매모호한 정체성 표방과 가라앉은 체 반등 기미가 없던 지지율이 그의 불출마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그가 제기한 가짜뉴스 시비는 한국 사회에 어려운 숙제를 던졌다.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전국을 누비고 있으나 선거와 관련한 가짜뉴스를 판별하기 쉽지 않다. 설령 가짜가 아닌 것으로부터 가짜를 가려낸다고 하더라도 그 뉴스의 확산을 막거나 법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마땅한 것도 아니다.

가짜뉴스와 관련한 가장 큰 문제는 개념상 혼란이다. 우리 언론은 대체로 가짜 언론사와 가공의 언론인 이름으로 작성된 포털이나 소셜 미디어의 날조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부른다. 기성 언론은 유권자 시민들에게 가짜뉴스의 패악을 경고하고 이들의 농간에 속지 말라고 안내한다. 이 과정에서 은연 중 관청에 등록하고 바이라인이 있는 등록 언론사의 정보가 ‘진실뉴스’ 혹은 ‘진짜뉴스’로 자리를 잡는다. 왜곡과 편파, 날조된 주류 언론사의 불공정한 뉴스들이 ‘가짜뉴스’ 개념의 맞은편 시소에 올라타 진짜뉴스, 진실뉴스로 둔갑할 위험이 농후하다. 가짜뉴스 개념이 거세질수록 정치권력자의 불순한 의도를 미화해서 전파하는 기존 언론의 비윤리적인 기사, 광고주의 상업적인 의도를 철저하게 반영한 일방적인 정보들이 진짜뉴스로 포장될 가능성도 커진다.

허위와 왜곡된 정보가 유권자와 소비자 시민들에게 미치는 해악은 이른바 ‘가짜뉴스’와 ‘진짜뉴스’ 간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거대한 주류 언론들이 규모가 작은 인터넷 언론을 일컬어 ‘사이비’라고 매도하는 그릇된 인식과 유사하다. 현존하는 등록 언론사가 생산한 정보에도 가짜뉴스가 섞여 있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가짜뉴스를 생산해 누군가를 인신공격할 경우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다. 피해자는 정보통신망법상 삭제, 임시조치 등의 대응을 할 수 있다. 선거 국면에서는 허위사실 공표죄나 후보자 비방죄가 적용될 수 있다. 반면 누군가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일상적인 상황에서 가짜뉴스를 만들어 시민사회를 혼란케 할 경우 대책이 마땅치 않다. 형사법상 ‘명예공작의 죄’를 새로 만들어 처벌을 가늠질 할 수 있으나 능사가 아니다.

포털 등 정보 매개자를 법으로 다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지금으로선 시민 스스로 뉴스의 거짓을 경계하고 바른 정보를 가려서 취하려는 태도가 최선이다. 가짜와 진짜가 딱 부러지게 갈라져 보이진 않을지라도.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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