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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칼럼]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박노권 목원대 총장

박노권 목원대 총장

  • 승인 2017-04-26 11:23

신문게재 2017-04-27 22면

▲ 박노권 목원대 총장
▲ 박노권 목원대 총장
외국의 대학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주 회의실 같은 곳으로 안내되곤 한다. 높은 천장, 육중한 테이블과 널찍한 공간, 외국 손님을 안내할 정도이니 당연히 모든 게 크고 화려한 곳이다. 대개는 그 테이블 한복판에 화려한 꽃이 놓여있기 마련인데, 어떤 대학은 그 꽃의 화려함이 유난히 돋보이는 경우가 있다. 도대체 무슨 꽃일까 하여 슬그머니 만져보면 조화(造花)다. 멀찍이서 볼 때는 마치 생화 같던 것이 만져보면 향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이아몬드 속에도 있다는 물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이 메마르다. 그 질긴 줄기에서 뻣뻣한 꽃잎이 질 줄을 모르고 마냥 피어있을 테니 경제적이긴 할 것 같다.

올 봄의 그 화사하던 벚꽃도 모두 바람에 흩날려갔다. 개화가 절정이었을 때에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조차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만들고, 그래서 어디론가 나들이라도 한번 나가고 싶게 만들던 그 벚꽃이 올해도 속절없는 시간 앞에서 시들고 말았다. 저 북쪽, 길림성의 어디쯤으로나 올라가면 새로 피어날 벚꽃의 그 환한 모습을 또다시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벚꽃이 아니다. 해마다 피는 벚꽃이건만 그렇게 빨리 지는 데에는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손을 뻗어 붙잡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았으리라.

영국시인 로버트 헤릭도 “수선화에게”란 시에서 실제로 그런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빨리 시들어 버리는 수선화에게 조금만 더 있어 달라고 애원한다. “예쁜 수선화야, 일찍 떠오른 해가 아직 중천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네가 그리도 빨리 떠나는 것을 보니 눈물이 나는구나. 제발 저녁 기도 시간까지 만이라도 머물러다오. 기도 마친 후 우리 함께 떠나자꾸나.” 사실, 벚꽃에 비하면 수선화는 꽤 오래 피는 꽃이긴 하지만, 활짝 핀 그 환한 아름다움을 보면 그 상태로 좀 더 머물렀으면 하는 아쉬움을 주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꽃이 진다고 해서 그 꽃의 수명이 다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음 단계를 위한 변화의 한 과정일 뿐이다. 아름다운 꽃이 지고 나면 열매나 구근이 맺히는데, 꽃이 지는 것은 그것을 위한 변화이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하더라도 지겹도록 지지 않는다면 조화나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게 될 것이거니와 무엇보다도 구근이나 열매를 맺기가 어려울 것이다. 『주역』에서 말하듯이, “다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하게 되며 통하면 오래가는 것”(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 절정에서 일제히 쏟아져 버리는 벚꽃을 보며, 변해야 할 때 더 이상 미련 두지 않고 가차 없이 다음 단계로 돌입하는 자연의 단호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마 요즘처럼 변화를 외치는 소리가 드높은 때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아직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들의 수효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에 종종 놀라곤 한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뀐 지가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구시대의 패러다임을 좇다가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기존의 것을 지키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바뀐 패러다임이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한지가 꽤 되었는데도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수하려 한다. 지지 않고 퇴색한 꽃이나 조화를 보는 것만 같다.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필자는 무엇보다 이 나라의 전반적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혔으면 한다. 구호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와 교육과 문화를 변화시켜 크게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꽃이 질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꽃잎을 떨굴 기미를 보이지 않는 사람, 그것도 모자라서 변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결집시켜 가지고 재미 보려는 사람, 화려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조화에 불과한 사람이 뽑히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또 다시 『주역』을 인용하자면, “세상일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天下之事 不進則退).” 불과 몇 십 년 만에 새로운 산업혁명이 도래할 만큼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이 시대를 제대로 읽고 대비할 줄 아는 사람,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다함(窮)의 끝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는 꽃은 지겹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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