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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준비되지 않은 우연은 없다

김길중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정보공개센터장

김길중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정보공개센터장

  • 승인 2017-05-14 11:13

신문게재 2017-05-15 20면

▲ 김길중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정보공개센터장
▲ 김길중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정보공개센터장
금을 화학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연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說’에 근거를 두고 있다. 4원소說에 의하면 모든 물질은 흙, 공기, 물, 불 등 4가지 원소의 다양한 비율로 구성되어 있으며, 금은 모든 금속 중 가장 고귀한데 어떤 금속도 4가지 기본 원소의 비율을 변화시키는 변환 과정을 통해 다른 금속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연금술은 기원전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하여 이슬람 세계를 거쳐 중세유럽에 널리 퍼져 라부아지에의 실험적 원소개념이 확립되기까지는 유럽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연금술사들은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라 불리는 어떤 물질이 값싼 금속을 귀금속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여겨 이를 찾아내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들은 여러 화합물들의 성질을 조사했으며 다양한 실험도구들을 고안하였다. 산과 알칼리(alkali)를 구분하고, 질산, 황산, 염산을 만드는 방법을 기록하기도 했다.

뉴턴보다 약 백년 뒤에 태어난 괴테는 83세로 사망하기 전까지 시인, 극작가, 정치가, 화가는 물론 광물학과 지질학과 관련된 연구서를 펴낸 과학자이기도 했고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도 활약한 전인적 인물이다. 파나마 운하, 도나우-라인강 운하,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기 백년도 더 전에 이들의 건설을 사업화하려는 계획도 세운 바 있는 괴테도 연금술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파우스트』 에서 젊음의 재생과 정력을 가능하게 하는 액체로 된 금을 제조하는 연금술 장면 등 여러 작품에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서양이 연금술의 역사를 쓸 때 중국은 불로장생약인 연단술(鍊丹術)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연단술사들은 불멸의 금속이라 생각한 금을 액체화해서 먹음으로써 영생을 누린다는 가설에 매달렸는데 주로 금을 정제한 수은을 섞은 연단으로 불노불사의 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꿈의 물질을 제조하기 위한 연금술과 연단술에 동서양 모두 납과 수은이라는 치명적인 중금속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연금술에는 당시에 가장 흔하기도 했고 가공이나 변형하기도 쉬웠던 납을 주재료로 사용했기에 연금술사들은 납중독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연단술이 횡횡했던 중국에서는 진시황은 물론 당나라의 태종·헌종·목종·무종·선제 등 5명의 황제 역시 수은 중독으로 숨지기도 했다.

철학자이자 자연과학자인 베이컨은 “연금술은 자신의 포도원 어딘가에 금이 묻혀 있다는 말을 믿고 열심히 땅을 판 덕분에 금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포도 뿌리를 덮고 있던 흙무더기를 헤쳐 놓아 풍성한 포도를 수확할 수 있었던 사람과 같다. 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용한 발명과 유익한 실험들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했다.

결국 연금술과 연단술은 금이나 불노장생약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아라비아에서는 연금술 과정에서 알코올을 발견했고, 중국에서는 연단술 과정에서 화약을 발명하는 등 수많은 실험과 노력들은 근대 화학이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영어 단어 Serendipity(세렌디피티)는 ‘뜻밖의 발견’, ‘의도하지 않은 발견’을 의미하는 단어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발생하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다. 알코올과 화약의 발견은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누적된 실험과 연구의 성과이며, 뢴트겐과 플레밍도 수많은 실험 과정 중에 X선과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 하루아침의 우연에 의한 발견은 결코 아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찾아오지만 그것을 기회로 만드는 것은 준비된 자의 몫인 것이다. 즉, 끊임없는 시도와 실행으로 노력하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행운인 것이다.

김길중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정보공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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