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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칼럼] 또 다시 6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6ㆍ25전쟁

김희수 건양대 총장

김희수 건양대 총장

  • 승인 2017-06-14 13:33

신문게재 2017-06-15 22면

▲ 김희수 건양대 총장
▲ 김희수 건양대 총장
여름의 길목에 접어들어 온 산하는 녹음으로 짙푸르고 한 낮의 태양 볕은 뜨겁기만 하다. 이렇게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강산에 지금부터 67년 전에 세계역사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피비린내 나는 기나긴 전쟁이 있었다니 전쟁을 직접 겪었던 사람인데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필자는 6ㆍ25전쟁 당시 20대 초반으로 대학을 졸업한 직후 전쟁이 터졌다. 이러한 젊은 나이에 끔찍한 전쟁을 직접 겪었으니 더더욱 매년 6월이 오면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가슴이 저려오기만 한다. 그래도 67년이 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으니 잊을 만도 한데 오히려 그 날에 대한 기억이 더욱 뚜렷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쟁의 아픔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우리의 모든 것을 송두리 채 앗아갔다. 일제 36년의 치욕에서 갓 벗어나 국민 모두가 해방의 기쁨과 함께 미래를 향한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독립국가로서의 기틀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 가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가장 취약한 일요일 새벽 4시를 기해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했다. 우리 국군은 나름대로 북한의 침공을 막기 위해 목숨을 다해 싸웠으나 무기와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훈련다운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이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전선을 내어주고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북한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그나마 춘천지역 일대 전선에서 악전고투를 벌인 결과 북한이 서울에서 더 이상 남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멈칫하도록 만들었다. 나름대로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미군이 참전하는 등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격에 나섰지만 40여일 만에 부산일대만 남기고 북한의 수중에 들어가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국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하지만 UN을 비롯한 전 세계의 자유민주의 국가들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팔을 벗고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전 세계 독립국가 90여개 국가 중 63개국이나 되는 많은 국가들이 직ㆍ간접적으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정말 고마운 국가들이 아닐 수 없다. 이름도 모르는 가난한 나라를 위해 직접 참전해 피를 흘리고 물자를 지원하며 나선 것이다. 이렇듯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함께한 국가들 덕분에 전열을 재정비해 서울을 다시 되찾고 한때는 압록강 초산진까지 진출해 한반도 통일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하지만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쌍방이 밀고 밀리는 양상이 계속되다가 결국에는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休戰協定)을 하게 되고 지금까지도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상태로 언제 또다시 전쟁이 재발될지 모르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6ㆍ25전쟁으로 폐허로 변한 우리나라는 당시 국민소득이 67달러에 불과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다. 필자는 직접 전쟁의 참혹함과 아픔을 체험하고 목격한 한 사람으로서 다시는 이같은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또 다시 6월, 6ㆍ25전쟁 발발 67주년을 계기로 전쟁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그 참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정부와 우리 국민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전쟁 폐허 속에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성장을 이루고 앞으로 아무리 멋진 청사진이 그려져 있다 해도 이 땅에 또 다시 6ㆍ25전쟁 같은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면 그 모든 꿈과 비전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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