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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시대】소박한 행복

김천환(수필가, (재)농어촌환경기술연구소 고문)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17-09-13 16:50
김천환
김천환 고문
반세기가 넘게 살아온 서울생활은 편리하고 자유롭고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는 물론 최첨단의 각종 정보와 문화의 접촉이 언제나 가능하기도 하지만 오염된 공기나 각종 소음에 시달리고 자연적인 것보다는 인공적이고 기계적이며 일상생활이 바쁘고 각박한 것도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시골생활이 더 편안한 삶이 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지만 정년퇴직하고 10년이 지나도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칠갑산 자락의 깊은 두메산골 옥가실(玉佳室) 마을에 조그만 농가를 10여 년 전에 구했다.

옥가실 마을 앞 지천(之川) 주변에 망월산을 비롯한 높고 낮은 산들이 이른 아침 물안개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모습과 멀리 금강(錦江) 건너 가마득히 보이는 계룡산이 어우러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 그림이다.



새벽별이 반짝이던 동녘의 하늘과 땅이 불그스레 물들기 시작하면 떠오르는 해님을 영접하려고 새들도 벌레들도 아름다운 노래를 시작한다. 자연의 숨소리에 강아지도 염소도 꽃도 풀잎도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켠다. 온 누리의 생명에 힘을 채워 주시려고 떠오르는 해님을 기다리면서 자연의 합창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불그스레하던 하늘이 점점 더 붉어지면서 따뜻한 내 가슴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붉다 못해 누~런 금빛 해님이 조금씩 조금씩 솟아오르면 가슴이 퐁당거리기 시작한다. 이글거리는 황금덩어리 해님이 둥그렇게 커지면 심장이 쿵쾅거리며 숨이 막힐 듯 환희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커다란 태양이 산을 딛고 하늘로 떠오르면 감탄과 흥분의 파도는 차츰 차츰 잔잔해지면서 황홀한 자연 앞에 감사 또 감사를 한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행복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느끼는 것이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지금까지 느껴본 행복들의 맛과는 다른 느낌의 행복을 느낀다.

지난 여름에 깻잎이라도 따먹으려고 들깨모종을 이웃집에서 얻어 심었다. 깻잎을 따 먹을 시간도 주지 않고 어느새 가을이 되어 푸른 들깨열매가 갈색으로 변하면서 수확을 재촉한다. 두툼한 비닐을 들깨 밭 옆에 깔고 들깨나무를 낫으로 조심스럽게 베어 비닐위에 놓으면 깨알 떨어지는 소리가 ‘토도독’ ‘토도독’ 난다. 행복이 쏟아지는 소리처럼 풍요롭고 신기하게 들린다. 짙은 들깻잎 냄새는 코가 매울 정도이지만 온몸에서 행복의 비타민이 솟구치는 느낌이다. 몇 됫박 안되는 들깨 수확이었지만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소박한 행복을 수확했다.

평범한 자연 속에서 들려주는 벌레나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나를 편안하고 즐겁게 해준다. 시(詩)의 ‘ㅅ’자도 모르지만 이른 아침 동녘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누런 해님을 보면서 느낀 감동을 몇 줄 적어보기도 한다. 소박하지만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에 흠뻑 빠져있음을 느낀다. 특별히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서라기보다는 자연 앞에 알몸으로 마음까지 열어놓고 순응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편해지니 자연이 더 아름답게 보이며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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