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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톡] 명령이 아닌 권유의 언어로

[박경은·김종진의 심리상담 이야기]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8-01-26 00:00
커피한잔
게티 이미지 뱅크
요즘 우스갯소리로 학사 석사 박사 위에 밥사 술사가 있고 그 위에 감사 봉사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 밥 한 번 먹자고 하면 어떤가? 차 한 잔 하자고 하면 어떤가?

며칠 전, 커피숍에서 모임을 하는데 갑자기 시낭송을 하라고 한다. "어떤 시를 낭송할까요?" 하고 선택을 못해 망설이고 있는데 어떤 분이 이해인 시인의 '차 한 잔 하시겠어요?'를 낭송하라고 했다. 그 분위기에서 김종진 하면 '차 한 잔 하시겠어요' 명령이 아닌 권유의 시가 떠오른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시낭송은 짧은 시 한 편에서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치유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은 수동적인 생활 습관이나 과도하게 넘쳐나는 정보들로 인해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일에 대해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선택장애 또는 결정 장애라고 하는데, 심리학에서는 햄릿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햄릿의 우유부단한 행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할 행동을 끊임없이 망설이며, 결국 복수에 성공하지만 자신도 죽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삶과 죽음까지 선택을 해야 하는 어려움, 현재까지도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명대사는 남아있다.



"차 한 잔 하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햄릿 증후군은 아니다. 먼저 말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이니까. 그런데 찻집에 들어가서 햄릿증후군이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차를 마시지? 너는 무슨 차를 마실래? 하며 그 때부터 결정을 어려워한다. '나는 아메리카노', '나는 유자차'라고 원하는 바를 자신 있게 말하고 결정을 하는 것은 자신안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새 학년이 되어 지문적성검사를 받으러 어머니께서 중학교 아들, 초등학교 딸을 데리고 왔다. 상담 중에 뭔가 자연스럽지 않으며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관찰 결과 가족 중 누구도 존대어를 사용하지 않고 반말과 명령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대화의 내용도 따뜻함보다는 딱딱함이 컸고 버릇없음도 느껴졌다. 순간 내 안에서 역전이 현상이 일어났다. 역전이란 치료자가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느끼고 싫어하거나 좋아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역전이가 일어나면 치료자 자신의 감정이 부각되게 되므로 상담에 방해가 된다. 최근에는 역전이를 '치료자가 환자에 대해 갖는 모든 감정반응이다'라고 넓은 의미로 보고 있다. 반말과 명령조의 말들이 귀에 거슬리고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나의 초자아가 강한 탓도 있다.

그 날 내담자들과 나는 호칭과 존대어에 대한 대화연습을 했고 집에서도 연습하도록 부탁을 드렸다. 잊고 있었는데 어머님께 문자가 왔다. 아이들을 부를 때 '야' '너'가 아닌 아들, 딸의 이름을 불렀고 명령이 아닌 권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반 존대어를 썼다고. 어머님이 먼저 사용하니 그 후 자식들도 엄마처럼 대화를 했고, 가정이 훨씬 화목해졌다는 글을 보며 나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반말이 친구 같은 느낌이라 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존대어가 예의 바른 화합의 가정으로 만든다.

김종진 한국지문심리상담협회 원장

김종진원장
*'박경은·김종진의 심리상담 이야기'는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대표와 한국지문심리상담협회 김종진 원장이 격주로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심리'의 창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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