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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21. 설날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 했나

다 모이니 참 좋다!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8-02-16 00:00
설날을 앞두고 사찰을 찾았다. 용의주도한 아내는 어느새 부탁을 하여 우리 가족 모두의 이름까지 단 등불을 켜놓았다. 다 아는 것처럼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등불을 밝힌다. 등불을 밝히는 이유는 마음을 맑고 밝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들과 며느리의 4월 결혼을 미리 축하하면서 백년해로를 기도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부르는 이름도 많다. 원일(元日), 원단(元旦), 원정(元正), 원신(元新), 원조(元朝),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연두(年頭), 연수(年首), 연시(年始), 신일(愼日), 달도(??), 구정(舊正)…….

머리 나쁜 사람이 이를 모두 암기하려다간 머리에 쥐가 날 일이다. 발원을 마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절에서는 떡국을 점심으로 내줬다. "진짜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네!" 조선시대엔 설날과 한식, 단오와 추석을 '4대 명절'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한식은 단오와 함께 유명무실(有名無實)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느낌이다. 다만 천만다행인 건 해마다 대전시 동구 판암동 대전쌍청회관 근방에서는 '판암골 단오 한마당' 축제가 멋들어지게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설날이 되면 아침에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다. 차례는 종손(宗孫)이 중심이 되는데 필자가 바로 그 종손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한다'는 속담에서도 볼 수 있듯 제사도 변변하게 지낼 수 없는 가난한 집에 제사가 자주 돌아온다는 건 실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더라도 설날 아침의 화룡점정 음식은 단연 떡국이다. 떡국을 먹어야만 비로소 나이 한 살을 또 먹는다는 인식은 여전히 확고한 우리네의 정서이자 이심전심이다. 그래서 혹자는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도 안 먹는다는 어처구니없는 맹신에 입각하여 설날에도 떡국 대신 밥을 고수하는 이도 있다고 들었다.

세상에 뉘라서 흐르는 세월을 어찌 거역할 수 있을까! 뭐든 그렇겠지만 긍정 마인드의 견지는 이 풍진 세상을 더 힘차게 살아 나가게끔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고 따라서 작년보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한층 늙어 보인다손 치자.

그렇더라도 "너희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도 봤다!"며 이를 긍정으로 치환하는 습관은 어떨까. 지금이야 그런 풍습이 뜸하지만 과거엔 설날이 도래하면 '설빔', 즉 설을 맞이하여 새로 장만하여 입거나 신는 옷과 신발 따위의 장만이 대세였다.

이어 세배를 다녔는데 아이들이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설날에 걷어 들이는 세뱃돈이 제법 쏠쏠했다. 그 돈을 아내는 항상 그렇게 '갈취'를 일삼았다. 때문에 아이들의 원망은 하늘을 찌르고도 부족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우리가 힘들게 절해서 벌어 온 세뱃돈을 뺏는 거예요?" "저금해 두었다가 니들 대학갈 때 이자까지 붙여서 줄게." 아이들은 제 엄마의 새빨간 거짓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설날이 되면 놀이문화 또한 푸짐했다.

그중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연날리기였다.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진 연날리기는 특히나 보름날에 멀리 날려 보내는 액연(厄鳶)이 압권이었다. '액막이연'으로도 불리는 액연은 한 해의 액운(厄運)을 멀리 날려 예방하는 것은 물론, 복을 기원하기 위해 대보름을 기해 띄워 보내는 연(鳶)을 뜻한다.

주로 방패연을 사용하는데 하지만 보름날 이후에는 연을 날리지 않는다. 그밖에 설날 무렵에 성행하는 윷놀이와 널뛰기도 재미가 만발하는 웃음의 화수분이었음은 물론이다. 설날에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나면 조상님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는 풍속(風俗) 역시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허나 이 또한 장례문화의 변화, 예컨대 화장(火葬) 내지 수목장(樹木葬) 등으로 대체됨에 따라 성묘마저 시나브로 과거지사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어쨌거나 설날이라는 명절이 있기에 타관객지에 나가 사는 아들과 딸도 집에 오는 것이다.

축제
영화 '축제' 포스터
축제안성기
영화 '축제' 중 한장면.
축제1
영화 '축제' 중 한장면
1996년에 개봉된 영화 '축제'는 40대의 유명작가 이준섭(안성기 분)이 시골의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본가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지금이야 사라진 모습이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상갓집에서 밤을 새자면 화투판이 벌어지는 건 '기본옵션'이었다.

본격적으로 문상객들이 밀려들면서 여기저기서 노름판이 벌어진다. 그중엔 조의금을 슬쩍해서 노름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돈을 잃었다며 깽판을 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5년이 넘게 노망(치매)을 앓아온 87세 할머니의 죽음은 상가에 온 가족과 사람들을 그리 슬프게는 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결국 가족들이 그간의 불협화음까지를 모두 봉합하고 가족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 가족의 모습은 바뀔지 몰라도 가족의 의미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설날이 딱 그렇다. 설날이 있기에 가족도 모이는 거고 음식을 나누면서 도란도란 정담까지 교환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모르겠으되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그렇게 '우리'라는 단어를 남발하고 또한 사랑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 아들이 이번에 대기업에 합격했어요."라든가 "우리 딸이 명문대에 들어갔어요." 따위들이 이런 주장의 방증이다.

또한 가족 대신에 자주 쓰는 용어가 바로 식구(食口)다. 밥을 같이 먹는 가족, 즉 식구(食口)가 모여 있는 곳은 평화로움의 정점이다. 이러한 가족과 식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선 왕왕 시끄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시끄럽다"고 한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의 말처럼 그러한 시끄러움은 되레 정겹기까지 하다. 설 무렵이면 '민족대이동'이 국민적 화두로 부상한다. 이는 여전히 명절 연휴면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근자엔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역류 현상도 형성되고 있다지만 아직은 고향을 찾는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지금도 설날은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아울러 가족 간의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도 실로 소중한 것이다.

등불 하나가 어두운 밤길을 밝히듯 가족 하나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웃음을 담보하는 환한 등불이다. 고루한 얘기겠지만 고통을 겪어보면 평소 귀중해 보였던 것들이 한순간에 부질없이 느껴진다.

반대로 평소에 가치 없던 것들 역시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요즘 치통으로 고생을 막심하게 했다. 참다못해 치과를 찾으니 의사선생께선 '대형공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형공사든 소형공사든 아파서 당최 밥을 못 먹겠으니 서둘러 치료 좀 해 주십시오!" 견적만 기백만 원에 육박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터인지라 망설여졌지만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할 건 하자는 생각에 부실한 치아의 공사에 착수했다. 건강한 치아를 일컬어 오복 중에 하나라고 한다. 따라서 필자처럼 시원찮은 치아의 소유자는 부실한 건강임을 새삼 드러내는 셈이다.

이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였는데 우선 어려서부터 풍찬노숙으로 몸을 함부로 방치한 탓이 지대하다. 질병은 삶의 결과물이라고 했던가. 여하튼 어려서부터 간난신고의 어렵고 가파른 삶을 살아나가자니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과도한 음주와 흡연에 더하여 현재와 같은 박봉의 직업으로 야근을 밥 먹듯 한 탓도 작용했다. 치아가 부실하다보니 설날 전에 먹은 거라곤 기껏 수반(水飯), 즉 물에 말아서 풀어 놓은 밥이 고작이었다.

반찬이랬자 김치조차 씹을 수 없기에 고작 김치 국물이나 대충 찍어먹을 따름이었다. 현실이 이처럼 냉혹한 까닭에 가뜩이나 야윈 몸의 체중이 2킬로그램 이상이나 빠졌다. 평소 60킬로그램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터였는데 이젠 57~58kg이다.

때문에 강풍이라도 불 때는 마치 낙엽처럼 그 바람에 부유(浮遊)하는 신세로까지 전락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면 저항력마저 감소된다. 밤새 기침을 하면서 야근을 하는 것도 저항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일 터다.

그렇게 수반으로 근근이 밥을 먹는 모양새이다 보니 불현듯 부드러운 식감의 두부요리가 그리워지기 일쑤였다. 두부는 필자처럼 치아가 부실한 사람에겐 더욱 제격인 음식이다. 식용유 따위로 부쳐도 맛있지만 끓는 물에 데쳐서 양념간장에 찍어 먹어도 별미다.

올해부터 필자의 나이도 '6학년'이 되었다. 세월처럼 빠른 게 없다더니 이젠 명실상부 할아버지군(群)에 속한 것이다. 문득 필자를 길러주신 유모할머니가 떠오른다. 치아가 모두 빠져서 만날 수반으로만 대충 식사를 하셨던 할머니…….

돈이 없어서 평생 치과라곤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할머니가 새삼 죄송스럽고 그립다. 더불어 튼튼한 이빨로 뭐든 사정없이 마구 먹어치우는 악어가 참으로 부럽다! 강조컨대 치아는 오복 중 하나라는 사실이 새삼 교훈으로 다가오는 즈음이다.

어쨌든 설날이 되어 모처럼 가족이 모두 모일 터이니 참 좋다! 그래서 얘긴데 만약에 설날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 했나?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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