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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노병은 사라지는가?

이승선(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고미선 기자

고미선 기자

  • 승인 2018-06-26 08:03
이승선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허구연. 야구 해설가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해설을 했다. 37년째다. 1951년에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예순 여덟, 그 중 육십 년을 야구와 살았다. 199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선수들이 한국의 프로야구 경기장을 누비고 다닌다. 그들의 시합을 중계하며 해설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1970년대에 출생했다. KBS 안치용 장성호, MBC 이종범 박재홍 정민철 김선우, SBS 안경현 이종열 최원호, SPOTV 서용빈 김재현 등이 그러하다. 이순철 양준혁처럼 1960년대에 출생한 위원도 있으나 한 손에 꼽는다. 나이만을 따지자면 허구연은 노병이다.

1950년대에 태어난 신문선 차범근 이용수 허정무 해설위원 등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월드컵 축구 해설시장을 휘어잡았다. 전문지식과 차별화된 어법을 해설의 주 무기로 활용했다. 지난 대회부터 얼굴이 바뀌기 시작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중계하는 이영표 안정환 축구 해설위원은 1970년대 생이다. 조금 젊은 박지성 위원은 1981년에 태어났다. 세 사람은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세 대회 동안 국가대표로 함께 활약했다. 세 사람 모두 축구해설을 하다가 경기장에 뛰쳐나가 선수로서 포지션을 소화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국민의 뇌리에 이들 해설위원은 그 만큼 젊다. 그들과 비교할 때 외연상 허구연은 노병이다.



허구연이 편파적인 해설을 한다며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사투리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 팬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팬들은 여전히 그의 해설에 열광한다. 그의 삶의 방식을 우러러 본다. 한국인 선수가 출전하는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와 외국인과 한국인 선수가 함께 겨루는 한국의 프로야구를 동시에 수준 높게 해설할 수 있는 그의 맛깔스러운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 야구 선수를 하다가 시청자들이 인정을 받는 해설가로 변신하기도 어려운데, 허구연은 미국과 한국의 야구 시장을 두루 해설할 능력을 쌓았다. 한 날에 작심하고 한 두 해 공을 들여서 축성되는 유형의 연약한 실력이 아니다. 체력과 두뇌와 노력과 투지와 끈기가 합일, 합체한 결과일 것이다.

허구연의 형들은 공부를 잘했다. 세 명의 형이 서울대를 다녔다. 허구연은 야구도 잘하고 공부도 뛰어났다. 시험을 치르고 경남중학교에 들어가 야구를 했다. 고려대 체육학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마음에 차지 않았다. 정식으로 시험을 본 뒤 법학과에 입학했다. 4번 타자가 되고 야구부 주장을 하고 홈런왕도 꿰찼다. 연습과 시합을 반복하면서 공부를 했다. 중간고사와 기말시험을 보러 강의실에 들어갔다. 졸업 후 실업팀 한일은행에 입단했다. 전성기였다. 1976년 한일 올스타전에서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좌절할 뻔했다. 공부를 했다. 고려대 법학과 대학원에 합격했다. '이사회 제도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중,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방송사 해설위원 활동을 시작했다. 몇 년 후 야구단 감독과 코치를 역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좌절할 뻔했다. 야구 유학을 떠났다. 귀국해 다시 야구해설을 맡았다. 정치권 진입 제안도 거절했다. 야구 해설가로서 허구연의 서른일곱 해가 지나가고 있다. 그는 노병이 아니다.

1927년 태어난 빈 스컬리는 아흔 살까지 67년간 야구 캐스터를 맡았다. 2016년에 그만두었다. 1920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난 헬런 토마스는 60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했다. 2010년 백악관 출입기자로 재직 중 사임하던 때 그의 나이 아흔이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타계했다. 아흔 살이던 2016년 '노병은 죽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뿐'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그의 생전의 공과 과를 놓고 사후 논쟁이 치열하다. 선대의 역사와 후대의 미래를 위해 공과 토론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노병은 토양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부하는 전천후 야구 해설가 허구연이 아흔 살을 훌쩍 넘길 때까지 오롯이 현역에 복무하기를 기원한다. 나이든 연령과 젊은 연령이 밀어내기 의자놀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때, 노병의 퇴장을 종용하지 않은 공존의 문화가 튼실해질 그 때쯤 허구연식 노병론을 들었으면 한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어록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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