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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 언론은 왜 존재하는가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고미선 기자

고미선 기자

  • 승인 2018-07-24 07:04
이승선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법원이 선고한 판결을 비판할 수 있는가? 당연하다. 판결을 자유롭게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은 기본권에 속한다. 민사 재판에서 이긴 쪽의 주장을 항상 진실하다고 확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민사판결의 결과와 반대되는 사실 주장, 즉 민사재판에서 패소한 쪽의 주장이라도 형법상 명예훼손죄 등의 '허위 사실'로 쉽게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태도는 위헌적 법률 해석이 될 수도 있다. 작년 말에 선고된 대법원 판결의 한 대목이다.

그 뿐인가. 대법원에 따르면 국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 공직자가 정당하게 직무활동을 하고 있는지 여부를 항상 광범한 감시·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언론이 국가정책과 공직자의 직무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보도를 할 때, 그 보도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어버린, 심히 경솔한 공격이 아니라면 언론에게 그 책임을 추궁해서도 안 된다. 대법원이 어제 오늘 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경 스무 해 전부터 정부나 공직자, 공적인물이 청구한 명예훼손 재판에 확고하게 적용해 온 판단 기준이다.



작금 한국 사회의 사법파동, 구체적으로 사법행정권 남용·재판거래 의혹·법관사찰·사법농단·법질서 파괴 등 다양하게 언명되는 사태의 전개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오작동을 염려하게 한다. 더욱이 사법파동을 취재·보도하는 상당수 언론의 태도는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생명선이 오염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최고 법원의 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 일부 직원의 사무용 컴퓨터를 일컬어 '판도라의 상자'라고 표현하거나 행정처 전 차장이 사용하던 컴퓨터와 그의 사무실 직원 가방에서 발견된 유에스비를 두고 '스모킹 건' 이라 일컫는 따위의 보도가 횡횡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긴 하나, 이미 발표된 법원 자체 조사보고서 내용만으로도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참담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사법사태를 취재·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더욱 가관이다.

작년 초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 대법원은 3차례 조사위원회를 꾸려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제1차 진상조사위원회는 '블랙리스트'를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비밀번호를 걸어서 법원행정처 기조실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는 파일이라고 정의했다. 2017년 4월 1차 조사위원회는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조사위는 의혹의 대상들이 사용하던 컴퓨터에 접근조차 해보지 못했다. 법원행정처가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언론의 일부는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대서특필했다.

의혹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법원 2차 추가조사위원회가 가동되었다. 추가조사위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출범했다. 올 1월, 의혹 대상자들의 일부 컴퓨터 자료를 접한 추가조사위는 법원행정처가 법관의 성향과 동향 정보를 수집해서 작성한 문서를 발견하고 그 행위는 법관의 독립을 해칠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재판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청와대와 교류했다는 문서도 찾아냈다. 그러나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결론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보도했다.

역시 의혹과 논란이 여전했다. 3차 특별조사단이 구성돼 의혹 대상자들의 컴퓨터를 열었다. 올 5월 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관례를 파악해서 비밀번호를 걸어 둔 파일이 존재했다. 특별조사단은 그러한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또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 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비판적인 법관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조직적·체계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부과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역시 일부 언론은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다'면서 사실무근의 괴담을 유포한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도를 이어갔다. 여러 번의 조사위원회는 받아쓰기 좋아하는 언론의 편향적, 침소봉대하는 보도태도를 미리 예상하고 '블랙리스트' 관련 용어를 노회하게 사용한 것은 아닐까. 대법원 판결들이 말하기를 언론에게 성역은 없다는데, 언론은 사법행정을 감시·비판·견제하고 있는가. 언론은 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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