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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언론의 품격, 언론인의 품위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고미선 기자

고미선 기자

  • 승인 2018-09-11 08:08
이승선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1974년 8월 8일 밤 미국 대통령은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생방송되었다.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서른일곱 번째 집무실 마지막 연설이었다. 미국 하원에서 그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상원의 탄핵심판 투표를 목전에 두었을 때였다. 그를 지지해 줄 정치적 기반 구체적으로 의회 내의 지지 세력이 없어졌다고 그는 고백했다. 연설 다음 날 정오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났다. 임기 중에 사임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지는 최후의 대통령이 되었다.

두 해 전인 1972년 6월 17일 밤 경찰에 불법 침입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자는 워터게이트 빌딩 관리인이었다. 경찰이 출동하고 5명의 괴한이 체포되었다. 괴한들은 도청장치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 빌딩의 민주당 사무실에서도 도청장치가 발견되었다. 괴한들에게서 공화당 대통령재선위원회의 자금과 관련된 자료가 발견되었다. 연방수사국(FBI)이 괴한들과 자금과 공화당 재선위원회의 관련성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초보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이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즈 역시 이 사안을 보도했다. '딥 스로트'라는 암호명의 취재원이 심층탐사보도의 대명사가 된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30년이 지난 후, 우드워드와 워싱턴 포스트는 '딥 스로트'의 동의를 얻어서 그의 실명을 공개했다.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FBI 부국장 마크 펠트였다.



괴한들에게 유죄가 선고되었다. 이 사건의 재판관이었던 시리카 판사는 권력형 범죄의 혐의가 짙은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자신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의회가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미 의회가 나섰다. 사건을 수사할 특별 검사에 콕스가 임명되었다. 닉슨은 콕스에게 조사를 그만두라는 압력을 넣었으나 콕스는 닉슨의 요청을 거절했다. 닉슨은 법무부 장관에게 콕스를 해임하라고 명령했다. 법무장관 리처드슨은 명령을 듣지 않고 사표를 던졌다. 닉슨은 법무부 차관에게 콕스 검사를 해임하라는 명령을 다시 내렸다. 법무부 차관도 사표를 제출하고 닉슨을 떠났다.

법무부 차관보를 통해 겨우 특검을 해임하는 데 성공하지만 닉슨은 이미 사건을 은폐한 거짓말쟁이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연방 대법원이 대통령 집무실의 은폐관련 대화 녹취 파일을 모두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의회의 탄핵이 가시화되었다. 궁지에 몰린 닉슨은 사임 연설을 하게 되었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즈는 진실 규명을 위해 굳게 연대했다. 젊은 기자들이 목숨을 내건 취재보도에 나설 수 있도록 편집국 간부들은 물론, 그들 두 신문사의 사주도 그들이 고용한 언론인을 강력히 보호해 주었다.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 그 때 워싱턴포스트의 외로우나 의로운 사주였다.

1971년 6월 13일, 뉴욕 타임즈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속여 왔다는 내용의 '펜타곤 페이퍼' 사건을 보도했다. 보도를 3일 째 이어가던 날, 닉슨 정부의 요청으로 법원은 뉴욕타임즈에게 발행 중지 명령을 내렸다. 보도는 끝장났는가. 아니다. 다음 날부터 경쟁자였던 워싱턴 포스트에 그 내용이 게재되었다. 보름 후 미 연방대법원은 국가기밀을 이유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새로운 진실이 품격 넘치는 두 신문의 언론인들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펜타곤 페이퍼 보도 1년 후 워터게이트 사건의 서막이 올랐다. 거짓말쟁이 닉슨이 사임할 때까지 두 신문의 언론인들은 진실 찾기에 진력하면서 동시에 협력했다.

그 때 워싱턴 포스트의 새내기 기자 밥 우드워드가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라는 책을 냈다. 트럼프가 발끈했다. 동료 번스타인은 우드워드를 응원했다. 경쟁자 뉴욕 타임즈는 익명의 정부고위 관리의 칼럼을 게재했다. 우드워드가 쓴 책의 내용을 후원하는 칼럼이었다. 그로 인해 'Not Me'가 한창이란다. 권력 앞에 바로 서려는 언론의 품격과 변치 않으려는 언론인의 품위를 본다. 반세기의 삶을 진실 규명에 매진해 온 언론인이 살아 있는 나라, 우리라고 왜 꿈꾸지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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