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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다문화]슬픔 담고있는 고려인의 역사

신언기 기자

신언기 기자

  • 승인 2018-12-05 11:27

신문게재 2018-12-05 13면

최리디아 대흥중 강의사진


지난달15일 딸이 다니고 있는 예산대흥중학교의 요청으로 다문화강사파견 '세상놀이한마당'을 진행했다.

이날 세상놀이를 진행하기 전에 교감선생님의 부탁으로 강의를 처음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딸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쁘고 저 에게는 영광이었다.

중학생들한테 무엇을 전달할까 많이 고민하다가 재미있는 것 보다는 유익한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저의 외할아버지세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정했다.

제가 준비한 내용이 먼저 우리 딸, 또 한국학생들이 알아야 될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러시아땅에서 살게 되었고 나중에 스딸린시대 때 어떻게 강제이주당했는지 또 고려인들이 어떻게 다문화가 되었는지 등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고려인의 역사가 한국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고려인한테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살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한국의 계속 이어지는 흉년, 홍수, 세금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힘들고 배고프고 죽고 그것 때문에 세금없이 공짜로 주는 러시아땅으로 1864년에 이주하게 된다.

나중에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고 못살게 될 때 독립운동하러 사람들이 러시아로 많이 이동하게 된다.

러시아에 사는 한국사람들을 고려인이라고 한다. 그들이 러시아땅에 살면서 한국어학교, 한국신문, 한국극장도 운영하고 자기문화를 잘 지키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스딸린의 명령으로 한국어를 못쓰게 되고 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땅으로 갑자기 러시아 고려인들을 이주시킨다. 준비시간은 몇 시간밖에 주지 않고 화물기차에 사람들을 태운다. 기차가 40일 동안 도착할 곳까지 간다.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못 버티고 죽는다.

그때 우리 외할아버지가 17살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도착하고 내렸는데 온통 들판이었다고 한다. 살 집을 못 구해서 많은 사람들은 맨손으로 땅파고 집을 만들었다. 가을에 왔는데 그해 겨울이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춥고 배고파서 가족 중 한명이 꼭 죽었다. 모두가 어떻게 살아남을까 그 목적밖에 없었다.

우리 외할아버지가 살아남아서 오늘 우리 엄마가 있고, 내가 있고 또 우리 딸도 있다.

고려인들의 역사에는 이런 슬픈 기간이 있었다. 자기 언어와 문화를 더 이상 못지켰지만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새로운 땅에서도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존경받고 부지런한 민족으로 인정을 받고 자리잡았다.

대흥중학생들이 열심히 듣는 모습을 보면서 제 강의가 그들의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리디아명예기자(키르기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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