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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대전미술의 광자진취시대 7080을 돌이켜보다

대전시립미술관 광자진취:대전미술 다시쓰기 7080 기획전

이해미 기자

이해미 기자

  • 승인 2020-02-13 08:23
광자진취(狂者進取): 묻지 않고 앞으로 나가 뭔가를 찾다.

공자는 "중용을 실천하는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면, 필히 뜻이 높거나 행동이 분명한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뜻이 높은 사람은 진취적이고 행동이 분명한 사람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자로편에서 말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공자의 광자진취의 표현을 빌려 1970년부터 1980년까지 대전미술을 반추할 수 있는 전시를 연다.



대전미술에 있어 7080은 새로움을 향해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미술 활동을 펼쳤던 시대로, 신세대 예술가들에 의해 발전되고 정착된 오늘날 대전미술의 거울이다.

대전시립미술관은 11일부터 4월 5일까지 '광자진취:대전미술 다시쓰기 7080'전시를 이어간다. 7080 문화 속에서 대전미술의 전위성, 실험성을 드러내는 소장품을 소개한다. 또 당시 대전미술에서 주요한 쟁점이 되었던 미술활동을 전시로 재서술하고, 작품 수집의 기준과 연구 방향을 확장해 나간다.

최영근, 선율, 1988년, 영채, 옻칠, 49×18×25cm
최영근, 선율, 1988년, 영채, 옻칠, 49×18×25cm
임봉재, K양, 1974년작, 캔버스에 유채, 152×85.8cm
임봉재, K양, 1974년작, 캔버스에 유채, 152×85.8cm
▲전개, 대전에 현대미술을 펼치다=대전은 1900년대 철도 건설을 계기로 도시의 팽창과 함께 학교가 늘어나고 미술교사들이 유입되며 본격적인 미술활동이 시작됐다. 1971년 출범된 충청남도미술전람회와 1973년 지역 대학들의 미술과 신설, 서울의 미술대학에서 수학한 2세대들의 대전 정착을 계기로 자체적인 미술 교육이 이뤄졌다.

▲생장, 자생과 변혁의 대전미술=70년 중반기 오랫동안 구상적 회화가 지속되던 대전미술에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며 도전과 실험정신을 가진 신진작가들의 집단적 활동이 전개된다.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그것을 작품에 투영시켜 한계를 벗어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움직임이 퍼져나갔다. 또 타 지역 미술가들과 연계해 전시활동을 이어가며 광범위한 동세대 의식을 확정해 나갔다.

박봉춘, 깃발, 1980년작, 캔버스에 혼합재료, 145×145cm
박봉춘, 깃발, 1980년작, 캔버스에 혼합재료, 145×145cm
이영우, 노출-Ⅰ, 1989년작, 캔버스에 유채, 145.5×112cm
이영우, 노출-Ⅰ, 1989년작, 캔버스에 유채, 145.5×112cm
김홍주, 무제, 1981년작, 캔버스에 유채, 경대틀, 42.8×23.5cm
김홍주, 무제, 1981년작, 캔버스에 유채, 경대틀, 42.8×23.5cm
▲도전, 새로움을 향하여=80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며 정세가 급변하고 미술계는 현실 상황에 참여하는 민중미술이 확산됐다. 대전의 미술계는 현대미술로 이행하려는 욕구가 싹트기 시작했고, 새로운 조형이념을 추구했다. 같은 장소에 의미를 둔 미술운동이 시작됐고, 국내 미술계에 신선한 자극을 던지며 파급되어 갔다.

▲확산, 대전미술의 지평을 넓히다=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며 미술은 개방화 국제화가 진행됐다. 그러나 이 시기 대전은 미술 인구가 증가하고 개개인의 역량이 높아지면서 지역적인 정체성과 향토애가 강해졌다. 학교와 분야별로 이뤄졌던 집단적 미술활동이 국제전시 개최로 이어졌고, 지방시대의 미술문화를 열고자 했던 노력은 한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국내외 교류 네트워크의 장을 형성하게 됐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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