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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칼럼]화성의 인면암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임효인 기자

임효인 기자

  • 승인 2020-03-05 18:21

신문게재 2020-03-06 22면

구자용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1988년 가을에 학술지들을 뒤적거리다가 미국에서 발행되는 응용광학 5월호에 실린 재미있는 논문 하나를 보게 됐다. 1976년 화성 주위를 돌던 바이킹 탐사선이 시도니아 평원의 1500㎞ 상공에서 찍은 사진 2장과 3만 3000㎞ 상공에서 찍은 2장의 사진을 더 선명하게 처리하고 분석한 내용이었다. 한쪽에 피라미드 형태들이 모여있고 15㎞쯤 떨어진 곳에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보는 사람의 얼굴을 닮은 지형이 뚜렷하게 나와 있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들과 스핑크스를 연상시키는 이 지형은 처음에는 우연으로 취급됐으나 화성의 고대문명이 남긴 흔적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몇몇 사람에 의해 1980년대 초반부터 제기됐고, 이 논문은 그 후속이었다. 늦은 오후의 햇빛을 비스듬하게 받은 인면암은 한쪽만 형태가 보이고 다른 쪽은 그림자로 덮였는데 햇빛이 반대 방향에서 비치는 오전의 희미한 다른 사진과 비교해보니 다른 쪽에도 대칭되는 위치에 눈이 있는 것 같다는 둥, 입안에 이의 흔적까지 보인다는 둥 분석도 있었다.

이 논문의 결론은 화성의 인면암과 피라미드들은 주변 지형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인공물일 가능성이 있으니 다음 탐사 때는 이 부분을 더 자세하게 조사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화성탐사선은 계속 발사됐고 더 정밀한 자료들이 쌓였다. 2001년 무렵 낮은 고도에서 찍힌 인면암의 고해상도 사진은 사람의 얼굴과는 전혀 닮지 않은 폭 2㎞의 불룩하게 솟은 평범한 지형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1986년의 논문에 실린 인면암 사진을 근거로 이후에 유사 과학은 자가발전을 통해 엄청나게 증폭되고 퍼져나갔고 인터넷과 대중 매체를 통해서 온갖 유언비어와 엉터리 학설이 더해졌다. 화성인이나 화성의 고대문명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소설과 영화 등으로 익숙했으므로 이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유사 과학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취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 미국의 응집물질 물리학회에 참석했을 때 어떤 대학교수가 최신의 탐사에서 찍은 인면암의 고해상도 사진과 과거의 사진을 비교해 보여주면서 당시 심하게 혹세무민하던 화성 인면암의 허구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최근까지 화성 탐사는 여러 차례 수행됐고 상세한 자료들도 많이 쌓여서 이제 화성의 인면암에 대한 터무니없는 주장은 잦아졌다. 재미있는 것은 생생하게 처리된 인면암의 사진을 소개했던 1988년의 논문은 오랫동안 유사 과학에 그렇게 많이 인용되고 세상에 큰 파문을 던졌는데 정작 SCI 학술지에 인용된 것은 지금까지 4회뿐이다.

최근의 탐사에서 아득한 옛날에 화성에는 거대한 물의 강과 바다가 있었으며 지금도 얼음 상태의 물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풍부한 물이 오랜 세월 유지되었다면 다양한 생명체가 번성했을 법도 하다. 화성 탐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가까운 장래에 유인 탐사까지 계획돼 있다. 언젠가는 화성의 땅 밑에서 고대에 번성했던 거대 동물의 화석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쩌면 깊은 동굴 안에서 화성의 고대문명이 남겨둔 벽화나 지금도 번식하고 있는 미생물이 발견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외계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된다면 인류의 종교와 인식체계가 크게 흔들릴 테니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 볼 일이다.

아폴로 11호의 유인 달착륙 50주년을 기념해 작년 미국에서는 대대적인 행사들이 열렸고 화성 인면암의 사진이 찍힌 후 44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가까운 달에도 로켓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돌아보면 미국과 한국 사이의 어마어마한 과학기술의 차이와 또 그만큼의 국력의 차이가 느껴지고, 국내의 부족한 자원이나마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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