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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문제는 탐욕이야

김명주 충남대 교수

이상문 기자

이상문 기자

  • 승인 2020-03-23 16:40

신문게재 2020-03-24 22면

김명주-충남대-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창궐할 때, 전문가들은 빽빽한 가축 사육장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육장이 빽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육식에 대한 인간의 탐욕 때문이었다. 나아지는 형편의 척도인양 육식은 증가하고, 증가하는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이다보니 사육장은 빽빽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육식 자체가 나쁜 것은 물론 아니다. 육식은 비윤리적이고 채식은 윤리적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생물을 죽이기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모든 생물체는 다른 생물을 죽임으로서만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법, 그것이 자연의 법이다. 문제는 탐욕이다.

사피엔스의 역사가 20만년, 유인원의 역사를 600만년으로 치면, 그렇게 오랜 세월 인간의 식량은 70~80 퍼센트 채식에 의존했다. 사냥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진화를 끝낸 지 꽤 오래된 우리 인간의 몸은 그 정도 비율로 채식에 적합하게 이미 구조화되었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식의 비중은 자꾸 늘어나고, 늘어나는 탐욕을 충족시키려다보니, 구제역, 조류독감과 같은 질병들로 무수한 생명체가 살처분되어야 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이, 코로나 19 역병은 세계화의 역기능이고, 인류세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한 탐욕의 부메랑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 확진자 중의 대다수를 이루는 집단감염자들의 종교적 분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확진자의 62퍼센트가 신천지교회와 관련 있다고 하고, 최근 들어 몇몇 개신교교회들에서 집단감염자가 나왔으니, 확진자 중 절반이 훨씬 넘게 종교단체와 관련이 있다.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이다.

특정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언론은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기엔 눈앞의 위기가 너무나 막중한 탓이리라. 하지만, 일부 기독교를 포함하여 교인의 안녕보다는 조직 지키기에 급급한 종교단체의 탐욕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소독한답시고 소금물 분무기로 뿌려댄 사람들은 개신교가 이단시하는 종교단체도 아니고, 소위 멀쩡한 기독교인들이다. 경기지역에서는 일부 교회가 아직도 여전히 주일예배를 강행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종교는 자유지만, 혹세무민할 자유는 없다. 예배는 자유지만, 교인의 건강을 파괴할 자유는 없다. 내 눈엔 주일예배 강행이 명성교회의 부자세습처럼 탐욕으로만 보인다.

종교단체를 포함하여 어떤 조직도 역기능과 순기능이 있기 마련이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 한 번도 부재한 적이 없는 종교가 지니는 순기능은 허다하다. 공동체를 결집하는 신화로서의 기능, 목적 없는 삶에 목적을 부여해주고, 고통 받고 기댈 곳 없는 자들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고, 출생부터 죽음까지 생의 전환기마다 의례를 제공해주는 등등의 순기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과거 종교가 제공하던 형이상학적 기능은 오래전부터 철학이 대신하고, 근대에 이르러 과학이 대신하게 되었다. 종교의 치유적 기능은 의학과 정신분석학이 대신하고, 종교의 정치적 기능은 정부가 대신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축소되었다.

그런데도 종교적 신념을 위해 과학적 정설조차 부정하고 신화적 신념을 고수하는 고루한 세계관, 교조적 구원관의 배타성과 독선은 일부 종교의 명백한 역기능이다. 물론 현대와 같은 세속사회에서도 종교의 순기능은 여전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역기능이 역전하는 경우도 있다. 주일예배 참석이 구원의 필수 조건 인양 신도들을 호도하고, 특정한 종교단체만이 구원받는다는 배타적 구원관으로 신도들을 기만한다면, 그 탐욕스런 독선은 단순 역기능을 넘어 파괴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원리의 실천이 결코 쉽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이웃을 파괴하지는 말기를.

김명주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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