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역사속에 살아있는 위기극복DNA

금상진 기자

금상진 기자

  • 승인 2020-04-07 11:20
  • 수정 2021-05-02 17:41

신문게재 2020-04-08 18면

금기자
가뭄이나 태풍, 지진 같은 자연재해나 대형사건 사고로 인한 국가적인 재난이 일어나면 습관처럼 찾아보는 사이트가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담긴 '조선왕조실록'이다. 우리 조상들은 국가적인 재난을 어떻게 극복했고 당시 정부의 역할을 했던 조선왕실은 재앙으로 일어난 민심을 어떻게 수습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은 수백 년 전 우리역사에도 수차례 등장한다. 지금처럼 질병을 칭하는 병명이 따로 없었기에 전염병이나 역병, 괴질로 검색해야 당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전염병은 1,052건 괴질과 역병은 800건에 달한다. 가장 많은 전염병 기록은 조선 18대 임금 현종실록에 실려 있다. 83건의 전염병 기록이 있는데 대부분은 기근으로 인해 백성들의 영양 상태가 부실해지면서 생긴 병이다.

의료체계는 물론 위생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조선은 전염병이 한 번 퍼지면 삽시간에 퍼지며 사망자가 전국에서 속출했다. 현종 3년 2월 경상감사가 올린 장계에는 "도내의 굶주리는 백성은 8만2천2백 53명이고,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1만2천7백 10명, 죽은 사람은 2백 97명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듬해에는 함경도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사망자가 270명에 달했던 것으로 적혀있다. 함경도, 평안도, 충청도, 전라도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했다. 특정 지역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되는 전염병의 형태는 코로나19의 확진자 추이와 매우 비슷하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으려는 정부 기관의 정책과 노력과 당시 조선 왕실의 대처도 비슷한 점이 많다. 조선 전역의 전염병 상황을 보고한 우참찬 송준길의 보고에 현종은 지방 수령들에게 제사를 지내 민심을 잡고 의술에 능한 의관을 역병이 창궐하는 지역으로 파견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생활비 지원과 세금감면 같은 경제적인 지원 정책도 시행됐다. 상평청(常平廳) 지금의 기획재정부에 명령을 내려 죽을 쑤어 길거리로 나온 백성들을 돌봤는데 나와서 죽을 먹은 사람들이 3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또한, 서울의 동서 방향으로 10안의 양반들에게 쌀을 지급했고, 빈민들의 구호를 담당했던 활인서에도 가족 수에 따라 식량을 제공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백성들에게는 10일간의 양식을 지급하여 돌아가게 하고 그 가운데 의지하여 돌아갈 데가 없는 백성들에게는 한 달의 여유를 주어 10일마다 식량을 주도록 했다.

현종 3년 5월에는 군역을 치르고 있는 병사 중 중 전염병에 걸린 자들을 가려내 노역으로 전환하도록 했고, 25년 대기근이 발생하자 서울 지역의 미납된 세금을 전면 탕감해주는 조치가 시행됐다. 전염병에 대한 조선 조정의 대책은 숙종과 중종 등의 실록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감염자 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기록 구호에 나서는 모습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비상시국에 처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전염병 대처 능력에 대한 외신들의 찬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을 비롯해 주요 선진국들이 머리를 숙일 정도다.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슬기롭게 해헤쳐나가고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은 아마도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위기극복 DNA가 내재하여 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수많은 전쟁과 경제위기를 이겨낸 우리 민족 특유의 DNA를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유감없이 발휘해 내기를 기대해 본다.
금상진 기자 jodpd@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