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 감자싹을 보며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전유진 기자

전유진 기자

  • 승인 2020-06-16 17:38

신문게재 2020-06-17 18면

백향기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드는 것은 기온 탓만이 아니다. 초록이 뿜어내는 풀향이 진해지고, 다니는 사람들의 옷이 가벼워지고, 거리에 나서면 나도 모르게 강한 햇빛으로 눈을 찌푸리게 된다. 모든 오감들이 여름을 맞이하는 느낌이 들어서 계절은 기온의 변화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지난해 작은 텃밭에 심었던 감자가 올해는 심지도 않은 곳에 싹을 내밀고 올라 왔다. 땅 속에서 겨울을 지냈을 감자 이파리를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겨울을 지내고 봄이 오면 땅 속에서 위로 밀어 올리는 새싹들은 아마도 겨우내 웅크리고 있었던 제 몸을 조금씩 움직여서 깜깜한 흙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라도 스미어 드는 햇빛과 약간의 온기와 작은 물기로도 느껴지는 촉촉함들을 알아 차리고 조금씩 조금씩 기지개를 켰을 것이다. 작은 싹을 밖으로 밀어 올리면서 느끼는 흙의 부드러운 촉감, 밖으로 싹을 내밀었을 때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빛, 이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 내리는 비의 촉촉함을 온몸으로 겪었을 것이다. 아주 작은 감자 이파리 하나도 이렇게 자연의 모든 것들을 온 몸으로 느끼고 겪으면서 여린 싹을 내미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훈훈한 바람의 느낌, 흙을 밀고 올라 올 때의 촉감, 깜깜한 흙 속에서 밖으로 싹을 내밀었을 때 처음으로 느끼는 눈부신 빛의 향연, 사방에서 스미어 드는 푸른 이파리들의 냄새, 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등 온갖 미세한 감각들이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여린 새싹을 둘러싸고 율동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텃밭 한 구석에 작년에 그리 실하지도 못하게 자랐던 감자의 흔적이 남아 새싹을 내미는 것을 누가 그렇게 주목하고 감동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싹을 내밀며 겪어 낸 온갖 미세한 감각들을 우리는 평소에 잘 알지 못하고 무심하게 지나치며 주목하지도 않는다. 우리도 계절이 바뀌면서 생기는 온갖 미세한 느낌들을 너무 무심하게 지나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여름이 되면서 길가나 개천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노란 금계국이나 큰 키에 흔들 흔들 머리를 흔들어 대는 하얀 개망초 꽃이나 조금 일찍 여기 저기 피어나는 노란 애기똥풀이나 보라색의 엉겅퀴나 어디서나 흔하게 보는 꽃들이 지천이다. 그러나 멈추어 서서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거나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아 보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각들을 잃어 버리면 바깥 세상을 잃고 나만의 세계 속에 갇혀서 살아가는 유폐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자연과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자세하게 관찰하고 특징을 살피고 분위기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고 하는 일을 늘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바깥 세상을 감지하고 알아차리는 통로는 흔히 오감이라 부르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중 어느 하나의 감각 만을 별도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문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는 일은 미각에 해당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먹음직스럽게 보인다는 표현이 있듯이 시각적인 즐거움도 중요하고 냄새가 훌륭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후각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식감이 부드럽다든지 아삭 아삭 하다든지 하는 등의 촉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온갖 감각이 모두 한꺼번에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주변을 느끼고 살피는 일은 늘 그저 그렇고 그런 주변의 일들이나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것같다. 작년에 심었던 자리에 스스로 겨울을 이겨내고 흙을 헤치고 올라오는 감자 싹을 보면서 깜깜한 흙 속에서부터 움터나는 과정에서 느꼈을 온갖 다양한 감각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날이 더워진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여름을 온몸으로 맞이 해야겠다. 그래서 보다 진한 여름을 지내 보아야 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