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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성 작가 "미성숙한 레드 사피언스에게도 휴머니티가 있을까"

이응노미술관 2020아트랩대전 세번째 전시 작가로 선정
홍익인간 오마주한 '레드 사피언스'의 인간성 회복 담아
"과거는 교정되고, 미래는 계산돼야 한다 암묵적 메시지 전해"

이해미 기자

이해미 기자

  • 승인 2020-08-06 08:33
이정성, Aporia, 2020, oil on canvas, 130.3x324.4cm
이정성, Aporia, 2020, oil on canvas, 130.3x324.4cm
이정성, Building, 2020, oil on canvas, 162.2x130.3cm
이정성, Building, 2020, oil on canvas, 162.2x130.3cm
이정성, There, 2020, oil on canvas, 162.2x130.3cm
이정성, There, 2020, oil on canvas, 162.2x130.3cm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왔다.

이응노미술관 ‘2020 아트랩대전’ 세 번째 바통을 이어받은 이정성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에도 홍익인간이 등장한다.

이들은 붉을 '홍(紅)'을 쓰는데 뜻풀이 그대로 '레드 사피언스(Red sapiens)'다. 이들은 작가가 던진 생존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인간성 회복을 위해 몸부림친다. 마치 현시대 우리의 모습을 오마주 한 듯 묘한 긴장감 그리고 동질감이 느껴진다.



지난 4일 전시 개막에 앞서 이정성 작가와 만났다. 레드 사피언스의 창조주라 불러야 할까, 작가는 태어남과 죽음, 일반적인 인간의 생애를 레드 사피언스에게 부여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나는 정치, 국가, 집단 그리고 외톨이를 만들어 내고 이를 먼발치에서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정성 작가는 "아트랩대전에 지원하면서 새로운 걸 하고 싶었는데 단군신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붉을 홍을 쓰는 빨간 사람들을 만들어 봤다.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어야 하는 시간은 100일, 3개월이다. 이는 사람으로 대입하면 3개월의 태아의 모습인 거다. 이를 모티브 삼아 미성숙된 인간 콘셉트로 레드 사피언스를 캐릭터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정성 작가의 작품은 드로잉, 페인팅, 입체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즉흥적인 드로잉은 컷 만화처럼 재치 있고, 페인트는 묵직한 유화 느낌으로 굵직한 메시지를 담았다. 입체는 우리나라 3개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변성암을 사용해 마치 레드 사피언스가 실제 했던 것처럼 유골 모형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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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을 본 따 만든 전시장에서 이정성 작가.
이정성
이정성, Open your eyes, 2020, mixed media on paper, 35.0x50.0cm
이정성 작가는 "레드 사피언스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과거는 교정되고, 미래는 계산돼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 시대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고, 적응해야 할까, 인간 스스로 변해야 할까 등 인간성에 대한 부분을 조금씩 터치하며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조금 변한 세상에 주목했다. 세월호 이후 비폭력 시위가 등장했고,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해 시위 문화도 성숙하게 변했다. 작가는 이런 모습을 보며 ‘인간도 변할 수 있구나, 저항에 대한 이 시대의 모습이 변했구나’를 느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또 밀려나 소외된 영역을 바라보는 관조적인 시선도 체득했다.

이 작가는 "개인전을 하던 초창기 작품들은 직설적이었는데, 최근에는 작업 방식을 냉소적인 관찰자로 바뀐 것 같다. 레드 사피언스 시리즈에는 집단도 있고, 외톨이도 있는데 우리 모두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성, Name, 2020, oil on canvas, 91.0x116.8cm
이정성, Name, 2020, oil on canvas, 91.0x116.8cm
이정성, 가림막, 2020,  oil on canvas, 45.5x53.0cm
이정성, 가림막, 2020, oil on canvas, 45.5x53.0cm
이정성, 가장 깊은 곳, 2020,  oil on canvas, 45.5x53.0cm
이정성, 가장 깊은 곳, 2020, oil on canvas, 45.5x53.0cm
모든 작업 과정이 소중했고 즐거웠지만, 유골 형태를 띠고 있는 돌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작가는 옥천 지역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는 변성암을 사용해 깎고 칠하는 과정을 거쳤다. 변성암은 가공하기 쉬워 유골 형태로 작업하기에 가장 적합한 재료였다.

이 작가는 "레드 사피언스 유골작업은 결국 생존에서 죽음을 보여준다. 생존이라는 서바이벌 속에서 살아가는데 사람들이 모이면 정치가 시작되고, 국가가 만들어지는 이런 사이클로 돌아가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굉장히 공허하다. 인간성이라는 학문을 탐구하고 미지의 영역이 어디까지고 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저는 인간과 동물은 다름을 인간성, 휴머니티를 예술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전시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호랑이와 곰이라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호랑이로 살아갈 것인가라고.

이정성 작가는 "이런 화두를 던진 것은 스스로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독백을 주고 싶었다. 전시 관람도 좋지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전시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화살을 자신에게 돌려서 고민해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참고로 이정성 작가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같이 죽음 문턱 앞에 있지만, 그 과정은 다르다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을 택했다.

이정성 작가는 "아트랩대전은 꼭 해보고 싶은 전시였다. 이응노미술관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레드 사피언스를 통해서 인간성에 대한 모습들을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정성 작가의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 M2프로젝트룸에서 만날 수 있다. 아트랩대전은 창의적인 청년작가들에게 예술 경력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응노미술관의 프로젝트다.
이해미 기자 ham7239@

이정성, Hand, 2020, acrylic on stone, 39.0x12.0x10.0cm
이정성, Hand, 2020, acrylic on stone, 39.0x12.0x10.0cm
이정성, 빛을 쫒는 사람들, 2020,  oil on canvas, 45.5x53.0cm
이정성, 빛을 쫒는 사람들, 2020, oil on canvas, 45.5x53.0cm
이정성
이정성, 외눈박이 마음, 2020, mixed media on canvas, 106.0x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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