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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의 아침단상 (988)] 나는 모른다, 고로 존재 한다

조훈희 기자

조훈희 기자

  • 승인 2020-09-27 13:42
  • 수정 2020-09-27 13:45

신문게재 2020-09-28 19면

염홍철-캐리커쳐
한밭대 명예총장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항상 상대를 이해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가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경우가 많고, 번번이 오해로 둔갑하여 파탄이 되는 경우도 있지요.

왜냐하면 이해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생각에 의해 재구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도 '실체'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 기관이나 뇌를 통하여 왜곡되고 재구성되는 모습이겠지요.

그러나 고대 철학자들은 이미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었습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것이지요. 그들의 결론은 '정신'을 통해 '말(logos)'로써 철저히 따져보고 감각에 절대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어느 신경생물학자는 "영혼은 뇌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철학적 사유마저 신경의 한 작용이라는 것이지요.

구별하기 어려워서, '나는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종교에서는 '단일한 진리'만을 움켜쥐고, 그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물론 '믿음'은 단일한 진리여야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이 진리라는 이름으로 증오하고 편을 가르는데 있습니다.

'단일한 진리'는 맞지만, 그것이 적용되는 순간 이미 진리가 자리를 상실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틀리는 것이라고 단정하지요.

이렇게 나와 다른 사람의 견해를 틀린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지요. 아무리 소통의 노력을 해도 온갖 오해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것이 외로움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명제, '나는 모른다. 고로 존재 한다'를 외치고 싶습니다.

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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