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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이번 생은 망했'소'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21-01-13 18:14

신문게재 2021-01-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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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제공
내 친구는 채식주의자다. 처음엔 우유나 생선도 일절 안 먹는 비건이었으나 지금은 조개 정도는 먹는다. 하여 친구와 나는 고깃집에 가서 돼지 갈비를 뜯는 건 엄두도 못 낸다. 채식을 하게 되는 경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고기가 몸에서 받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한동안은 만날 때마다 신기해서 물었다. "어떻게 고기가 안 먹고 싶을까. 건강은 괜찮고?" 친구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육식을 끊은 친구는 지금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이 활기차게 살고 있다. 혈색도 나보다 좋고 빈혈이 생겨 철분제를 먹는다든지 하는 건강상의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덕분에 우리는 온갖 채소와 말린 나물을 넣고 비벼먹는 돌솥비빔밥 전문식당 단골이 됐다. 단, 친구는 계란 노른자는 한쪽으로 밀쳐 놓고. 앞으로도 친구와 곰탕에 밥 한 공기 말아 먹는 일은 없을 듯하다.

식성은 취향일까, 인식일까. 채식을 하는 친구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고기를 먹는다. 내가 육식을 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아직은 고기를 포기하지 못하겠다. 고기의 감칠맛을 채소에선 결코 맛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7~8년 전의 경험은 채식이 내 몸엔 옳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원체 위장이 약해 한약으로 된 소화제를 달고 살던 몸이었다. 늘 뱃속이 더부룩하고 체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하루 한 끼는 채소만 먹기로 결심했다. 당근, 양파, 부추, 토마토, 브로콜리, 양배추 등 온갖 채소를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 먹었다. 그래야 소화가 잘 되고 많이 먹을 수 있어서다. 효과는 놀라웠다. 그 뒤로 소화제가 필요 없어졌다. 변비로 고생하는 일도 사라졌고 무엇보다 똥을 눠도 냄새가 안 난다는 사실. 유레카! 의사는 똥 냄새가 건강의 척도는 아니라지만 화장실 가는 일이 즐거워졌다. 지금은 고기를 먹을 때도 채소를 듬뿍 먹는 건 물론이다.



채소는 분명 몸에 좋다. 그렇다고 육식을 멈출 수는 없다. 왜 인간은 이토록 고기를 갈망하는가. 수천 년 동안 고기는 인간을 먹여살려왔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그 고기가 이젠 인간을 망칠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 암, 당뇨, 심장질환…. 더불어 동물의 고통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어졌다. 르포작가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는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얼마나 끔찍한 곳에서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너무 '리얼해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한동안 마트에 진열된 계란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다. 가정용 전자레인지만한 케이지에서 네 마리의 닭이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시길. 그런 케이지들이 거대한 공간에 꽉 들어찬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쪼아대고 산 채로 썩어가고, 치를 떨게 하는 닭똥 썩는 냄새와 닭의 털에 달라붙어 버글거리는 이. 작가는 그런 닭들이 너무나도 역겨워 보여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불쌍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동물들의 이런 고통도 잠시,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도 고기를 먹는다. 고소한 풍미와 달큰한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삼겹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배가 불러서 먹을 수 없을 뿐. 동물에 대한 죄책감과 탐욕 사이에서 시소를 탄다. 늘 이런 식이다. 이율배반적인 복잡한 마음을 안고 앞으로도 계속 고기를 먹을 것이다. 올해는 소띠 해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귀한 존재였다. 인간에게 모든 걸 내어 주었다. 평생 일하고 인간의 입을 호강시켰다. 소고기는 고기 중에서 제일 비싸다. 맘 놓고 사먹을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봄,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자 사람들이 한우고기부터 사먹은 웃픈 얘기가 뉴스거리였다. 인간이 젖과 꿀이 흐르는 고기의 오랜 중독에서의 해방은 애초에 글러먹은 것 같다. 고기들의 이번 생은 쫄딱 망했다. <디지털룸 2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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