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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나의 길을 가는 사람들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3-02-07 17:27

신문게재 2023-02-08 18면

백향기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신문을 보다가 어느 학생이 서울의 명문대학 의대를 그만 두고 고향인 광주의 사립대학 수학교육학과에 입학하였다는 기사에 눈이 갔다. 의학 공부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었단다. 그리고 자신은 사교육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를 바로 잡을 교육 정책에 관심이 많아서 나중에 꼭 교육감이 되겠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 씁쓸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도 부모는 극렬하게 반대하였을 것이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명문대학 의대를 그만 두고 고향의 대학에서 교사가 되는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즉시 찬성할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새로 입학한 대학을 선택한 이유가 집에서 가깝고, 명문대학만 선호하는 세간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였다니 대부분이 무모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의 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으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꿈을 향해서 걸어가는 존재가 아닌가? 그래도 이 학생의 결심은 안정 속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안도감이 든다. 나이로 보아 선택이 늦지 않았다는 점, 의사이든 교사이든 우리 사회에서는 안정된 좋은 직업 사이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어느 길을 가든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정말로 위험해 보이는 일은 안정된 일을 하다가 뒤늦게 예술을 하겠다고 결심을 세우고 실행으로 옮기는 경우이다. 남편 친구 딸은 명문대 공대를 나와서 대기업에서 안정된 고소득 연봉을 받고 일 잘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미술을 하겠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거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맹렬하게 작업을 하는 친구도 있다. 이런 경우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뒤늦게 시작한데다가 예술을 전업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이 이어질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화가들 중에도 늦깍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앙리 루소는 하급 세금징수원으로 일하면서 가정을 꾸리다가 40살에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소정의 출품료를 내면 누구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앙데팡당전에 계속 그림을 출품했지만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평일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라는 뜻으로 일요화가라는 비아냥을 받았지만 이국풍의 그림을 꾸준히 그려 보이고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 세계를 추구한다, 종국에는 피카소의 눈에 띄어 성공적인 작가로 성장해 간다. 그는 49세에 이르러서야 직장을 사직하고 본격적인 화가로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폴 고갱도 비교적 늦은 나이인 35세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경우이다. 고갱은 증권 거래소에서 오랜 기간 일하다가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은 늦은 나이에 전업 예술가가 되어 성공한 몇 안되는 사람들일 것이다. 꿈을 찾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그러나 필사적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간 수많은 무명의 작가들이 있을 것이다. 흔히들 은퇴하고 나서 취미로, 또는 젊은 시절의 꿈을 되새기며 많은 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악기를 연주하는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한다. 그러나 생계와 맞바꾸며 전업 예술가로 살기로 결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평생을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텀벙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눈에서 빛이 난다. 그리고 열정이 생긴다. 현실과 예술의 길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국의 작가 커트 보니것이 자신의 책 '나라없는 사람'에서 쓴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추어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 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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