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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색각이상과 장애인 복지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이상문 기자

이상문 기자

  • 승인 2023-04-13 10:13

신문게재 2023-04-14 19면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세상보기)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색상을 구분하는 색각은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기 원시 생물들은 단순한 빛 감지 기능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다양한 빛 스펙트럼에 특화된 감각세포가 진화하게 됐다. 발달 된 색각을 가진 생명체는 주변 환경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해 적대적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사람의 망막에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있는데, 각각 적색, 녹색, 청색 파장을 인지한다. 원추세포가 인지한 자극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면, 인지된 세 파장의 비율에 따라 색상 이미지를 합성해 다양한 색상을 구분할 수 있다. 적색, 녹색, 청색을 기반으로 하는 정교한 색상 조합은 먼 옛날 수렵 채집 시기에 익은 과일을 고르고, 녹색으로 울창한 수목 사이 변화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색상 인식 기능에 하자가 발생해 색상 구분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색각이상이라 하는데,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 남성의 5.9%, 여성의 0.44%가 하나 이상의 색각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색각이상은 원추세포 손상 및 손실 형태에 따라 색약과 색맹으로 나누어지는데, 색약은 세 종류 원추세포가 다 존재하지만 그 기능에 일부 손상이 있는 상태이고, 색맹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원추세포 기능이 완전히 소실된 상태이다. 색맹 중 가장 흔한 형태는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고 같은 색으로 인식하는 적록색맹이다.



선천적인 색각이상의 경우 현재의 의료 기술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 다만 후천적으로 녹내장, 당뇨망막증, 황반변성, 시신경염 등에 병발하여 생기는 색각이상은 원인 질환의 치료 경과에 따라 호전될 수 있다.

색각이상은 일반적으로 약한 수준의 장애로 분류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색각이상인의 시각 인식 능력이 일반적인 색 시각을 가진 사람들, 즉 색각비장애인보다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색각이상인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시각 대비 감도를 가진다. 대비 감도는 밝기의 차이에 따라 물체와 배경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야간 운전이나 작은 글씨를 읽는 것과 같은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색각이상인들은 낮은 조명 조건에서 물체를 식별하는 것과 같이 높은 수준의 대비 감도가 필요한 작업에서 색각비장애인에 비해 장점을 가질 수 있다.

다른 측면으로는 색 구별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색상보다 패턴과 모양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장점도 있다. 색상 구분 면에서도 적록색맹의 경우 카키색 계열에 대해 보다 세밀한 구분이 가능해, 군부대에서 위장한 적을 판별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야구나 골프 등의 스포츠에서는 경기 중에 물체를 식별하고 추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색각이상인들은 경기 중 색상 외의 다른 시각적 측면, 즉 움직이는 물체의 식별, 추적에 더 집중할 수 있으며 이런 특성은 당연히 경기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골프선수인 잭 니클라우스도 색맹으로 알려져 있다.

색각이상자들은 일반적인 색상 차이에 가려져 자칫 간과되기 쉬운 질감과 음영의 차이를 보다 쉽게 인식할 수 있기에 물체의 질감, 대비 및 패턴과 같은 시각적 지각의 다른 측면에 대한 인식력이 좋아진다. 색 외의 세부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은 예술이나 디자인 분야에서 독창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색상 정보 식별 대신 다른 시각적 측면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은 상상력과 창의성을 높이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특정 능력 장애는 종종 다른 능력이 발전하게 되는 동기가 되곤 한다. 이러한 '대체 능력'의 획득은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을 비롯한 다양한 신체장애인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길러진 적응 능력은 다양한 환경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장애인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본이 되는 여건을 갖추어 나가는 것은 사회의 의무 중 하나이다. 여기에 더하여 장애인들이 가진 잠재적 특성과 능력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사회에서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장애인 복지의 중요한 측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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