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방 없이 떠도는 길
개암 으름 익었으니
바랑 발우 놓고 가자
구름아
가린 손 내려라
달빛 채반 식을라.
<시작 노트>
무욕의 보살 같은 한 시인이 이름조차 홀로 묻고 소문 없이 떠났다.
임의 탁발 길에는 바랑도 메지 않고 발우도 지니지 않으셨다. 아마도 산에서 여무는 개암, 으름, 머루, 다래가 있으니 아무 걱정이 없고 풀잎에 이슬이 맺히니 목마르지 않다고 손사래 치며 가셨을 것이다.
진정한 시인의 길이라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세속에 물든 나는 서러움으로 젖어온다. 하늘로 탁발 떠나신 임은 밤마다 동녘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넘어가기를 멈추지 않으시며 날마다 시의 양식을 채울 것이다.
채워진 시조의 양식을 조금씩 취하시고 그믐밤이 되면 하루 쉬었다가 다시 초승길을 떠날 것이다. 임의 채반에 따뜻한 시심이 차오르는데 구름이 손을 올려 가리면 식을 것만 같다. 그 은은한 빛이 구름에 가리고, 그 고매한 인품이 망각의 늪으로 사라지면 안타깝고 속상하다. 오늘은 무엇으로 공양하고 먼 길을 가시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의 인연이 사부이셨건만 아무것도 보답할 수 없어 더 서럽다.
봄이 되면 매화가 되고, 여름이 되면 연꽃으로 피어나는 임의 목소리를 나는 듣겠지만 진정 임의 채반에 나는 산나물 한 그릇도 올려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홀로 비추고 홀로 하늘로 출가하여 가시는 임.
고결하신 시승(詩僧)이시여!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여!
수미산에 무량수전 지으시고 성불의 뜻 이루소서.
다울 박헌오/(사)한국시조협회 고문
![]() |
| 박헌오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