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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
부석사 불상을 복제하자는 주장은 2017년 부석사의 소유권을 다투는 항소심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재판장은 불상을 복제하여 진품은 일본으로 보내고 부석사에는 복제품을 두자고 제안했다가 환수 의지를 퇴색시킨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런 점에서 과거 불법적인 수단으로 반출된 문화유산의 복제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서산 부석사 관음상 복제품 봉안은 대법원의 소유권 판결로 진품 환수가 어려워진 현실 속에서 역사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주체적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7년 복제 논의와 2026년 복제품 사이에는 역사적 진실 규명이 있었다. 바로 왜구 약탈 사실에 대해 한국의 재판부가 '상당성'을 인정한 것이고 부석사의 '동일성'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복제의 두 얼굴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은 성공적인 사례다. 그리스는 영국 박물관이 소장한 진품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품의 반환을 요구하며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완벽한 복제품을 전시했다. 이 복제품은 진품의 부재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여 영국의 약탈 행위를 폭로하는 강력한 정치적·문화적 메시지가 되었다. 복제가 환수 운동의 도화선이 된 대표적 예다. 반면 실패한 사례도 존재한다. 일부 아프리카 및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 박물관과의 오랜 협상 끝에 복제품이나 장기 대여 형식을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점유국의 소유권을 사실상 인정해 주는 꼴이 되었고, 국제 사회의 환수 여론을 급격히 냉각시켰다. 복제라는 타협안을 택했다가 환수의 길을 영구히 닫아버린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공주 출토 보살반가상의 복제 추진은 신중히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보살반가상은 일제강점기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한반도 전역에서 불법·편법으로 수집한 '오구라 수집품' 중 하나다. 현재까지도 한일 문화재 환수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살반가상의 복제는 자칫 불법 반출된 전체 오구라 수집품의 환수 명분을 무너뜨리는 도미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복제는 환수 운동의 종착지가 아닌 임시방편이어야 하며, 파르테논 사례처럼 약탈 행위를 폭로하는 수단이 될 때 의미가 있다. 부석사불상봉안위도 진품의 환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향후 복제와 진품의 교환을 위해 환수문화유산기념박물관에 현상 복제품을 두고 있다. 복제 기술의 발전이 약탈국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국외 반출 문화유산의 복제를 추진할 때는, 이것이 환수 운동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완전한 환수를 향한 당당한 외침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복제라는 편리함 속에 숨은 덫을 피하고 우리 조상의 혼을 진정으로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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