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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영화적 상상력에 대한 폭력

김홍진(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정바름 기자

정바름 기자

  • 승인 2026-10-07 16:44

신문게재 2026-10-08 19면

김홍진
김홍진 교수
언제 이 영화를 보았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으로 분한 톰 행크스는 흑백필름의 공적인 역사 기록물 속으로 들어가 케네디 대통령과 버젓이 악수를 한다. 역사적 기록을 허구화하는 이런 상상력에 대해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영화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가 사실의 기록이라면 길거리 CCTV를 재생하면 될 일이다. 영화에서 역사적 사건은 언제든지 가공되거나 재해석될 수 있는 무궁한 소재 거리다. 모든 픽션은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이라는 상징계의 질서에서 탈주해 상상계에 진입함으로써 존재 이유와 자기 정체성을 획득한다.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판타지를 개별적 장르로 규정하지만, 사실 모든 예술은 허구적 환상을 기초로 한다. 이건 누구나 아는 평범한 상식이다. 가령 손바닥에서 거미줄을 쏘아대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 추락하는 비행기를 사뿐히 들어 올려 구해내는 슈퍼맨 등등…. 이들은 하나같이 허무맹랑하다. 바보가 아니라면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수류탄으로 팝콘을 튀겨 스크린에 뿌려도, 또 어느 드라마에 멀쩡한 신윤복을 여성 화가로 둔갑시켜도 아무런 불평 없이 재밌게 본다.

소설이나 영화의 이야기에서 상징계의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들은 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사실(史實)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관점에서 판독되고 상상력을 통해 가공될 수 있는 소재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기록된 사실들에서 기록되지 않은 사실을 추론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가령 둘 사이 공백이나 의문들을 채우고 이어줄 사실들이 빠져 있다면, 이 경우 소거된 고리를 둘러싸고 온갖 가설과 추론이 난무하게 된다. 그것을 음모론이나 허위사실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 사건을 픽션의 소재로 다루는 영화나 소설의 서사는 여기서 출발한다.

누군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한 것처럼 역사적 사실 또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것에는 필연적으로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신처럼 전능하지도 않고, 또 사실은 누군가의 의식에 의해 만들어지고 규정된 탓에 알려진 역사적 사건에서 충분히 다른 사실을 유추할 수 있고,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사건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다. 그것이 음모론이든 허위사실이든 판단의 몫은 오직 관객에게 있을 뿐이다.



어떤 사건이 있다. 그런데 그 사실관계에 대한 인과론적 정보나 설명이 부족하다. 왜 그럴까? 의문이 발생하면 인간은 그 빈 공백을 참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 공백을 채워 넣어야만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세계 내에서 존재의 불안을 걷어내고 자기 존재와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의문의 빈 고리를 상상력을 통해 개연적으로 하나하나 연결해 사건의 전말을 추론해나간다. 허구를 덧씌워 그럴듯하게 탄생하는 게 이야기이다. '팩트'와 '픽션'을 버무려 만든 '팩션'이 대표적인 양상일 것이다.

오래 전 옛날 광개토대왕을 다룬 고구려 소재 드라마가 사실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역사학자들의 거센 비판이 있었다. 역사와 픽션을 구분 못 하는 먹물 꼰대들의 횡포랄까. 상징계와 상상계, 사실과 허구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창작되는 게 이야기다. 수많은 역사물을 보라. 작가에게 역사적 사건은 이야기 소재나 배경일 뿐이다. 이즈음 영화 '암살자(들)'을 음모론이나 역사왜곡으로 몰아붙이며 감독과 배우를 규탄하는 태도는 창작가나 대중에게 중요한 것은 알려진 사실보다 재미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역사적 사건과 작품은 본질적으로 다른 두 세계, 이 둘의 벽을 깨는 행위는 예술에 대한 모독이며 폭력이다.

/김홍진(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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