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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크]대전, 기억상실증에 걸리려는가

최충식 논설실장

최충식 논설실장

  • 승인 2012-04-15 13:39

신문게재 2012-04-16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도시의 소프트웨어는 허물고 불태워 사라지고 미끈한 아파트, 빌딩만 쑥쑥 선다면 우리와 후대가 공유할 원초적 기억은 어디서 찾지?”

인쇄 매체인 신문에서 가독성(readability, 독이성)의 기준은 중요하다. 보기보다 뜻은 쉽다. '읽기 쉬움', '쉽게 읽힘'이다. 도시 읽기에도 가독성(imageability)이 있다.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역 구간은 특히 가독성이 뛰어난 공간이다. 도시 각 부분이 한꺼번에 인식되고 구성되는 이미지성을 갖췄다. 근대 관공서 건물의 전형을 현대에서 보여주며 서 있는 도청 건물은 외래객들의 이정표 구실도 한다.

도시의 아이콘이며 숨통인 이러한 공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공주 갑부 김갑순의 목조 팔작기와집 별당으로 6ㆍ25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국정을 논의했던 대사동 별당도 헐렸다. 연식이 가장 앞선 대전 근대주택인 선화동 사범부속학교 교장 사택은 화재로 등록 말소된다. 중앙극장(옛 대전극장)이 사라져도, 오류동 박용래 고택을 밀고 주차장을 만들어도 이광수, 박목월 고택도 날아갔다며 꿈쩍하지 않는다. 대구 이상화 고택이 철거 위기에서 구해진 게 신기하다. 간이역들이 문화재로 등록되는데, 회덕역은 철거했다. 개화기 이후 대전 근대문화유산 886건 중 710건, 그 이상이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 흔적의 관광자원화에 가장 열성적인 지자체는 군산이다. 일본인 대지주의 집 히로쓰 가옥도 그 바람에 살아남았다. 철도국장 관사였던 대전 대흥동 뾰족집은 재개발 바람에 처참하게 뜯겼다. 군산은 옛 조선은행도 보수한다. 식민지 수탈 도구인 금융시설인 줄 몰라서 그러겠는가. 간당간당하는 조선식산은행(산업은행 대전지점)의 운명과 대조를 이룬다. 번성했던 시절, 조선 3대 시장(평양, 대구와 함께), 2대 포구였던(원산항과 함께) 강경이 같이 보고 배울 점이다.

군산은 문화재 170여 건이 산재한 월명ㆍ영화ㆍ장미동 일대를 재구성하면서 “군산의 역사는 개항 이후의 역사”라고 아예 '커밍아웃'하기에 이른다. 대전도 1909년 호남선 분기점이 되고 도청이 공주에서 오기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원도심 활성화를 한다는 대전에서 주변 도시기능 재배치의 핵심 소프트웨어인 근대문화유산은 찬밥 신세다. 말로만 걷기 좋은 도시이지 에지효과(edge effect)를 낼 건더기는 걷어낸다. 개발 바람에 건축학적 고찰이 끼어들 여지는 아무데도 없다.

인류의 씻지 못할 과오인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태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등 '네거티브 유산'은 성찰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은 출입구에서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나누어져 인종차별을 환기시킨다. 출입구가 2개인 강경 북옥교회 또한 남녀유별의 과거를 성찰하게 한다. 충남도청사 본관 외벽(사진) 등에는 일제를 상징하는 태양륜, 국화륜, 안목각 문장이 선명하다. 그러나 정말 청산할 것은 기억이 아닌 의식이다.

근대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와 같다. 일제 강제노동의 산물인 통영 해저터널을 지나며 들었던 생각이다. 21세기다운 문화적 다양성, 시민 삶과 공존하며 만드는 공유의 가치가 무시되면서 도시의 몰골이 흉해졌다. 일제 찌꺼기 청산 뒤에 숨은 개발 논리에 밀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근현대 문화유산이 멸실되고 있는 것이다. 대전의 기억상실증, 여기서 그쳐야 한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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