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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취향대로 놀러오세요”... ‘독립서점’ 지역의 사랑방되다

한세화 기자

한세화 기자

  • 승인 2022-04-14 15:15
  • 수정 2022-04-14 18:05

신문게재 2022-04-15 9면

출판·도서업계의 공룡급 프랜차이즈 등장으로 지역 서점이 위기를 맞았다. 1995년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출몰 1년 만에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도서 유통업계에 새로운 지형도를 그렸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종로서적과 영풍문고가 인터넷 서점 서비스를 시작, 1999년에는 예스24의 전신 도서사이트 웹폭스가 인터넷 판매를 개시했다. 알라딘, 인터파크가 뒤를 이으면서 대형 인터넷 서점이 도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1년 기준 전체 출판시장 매출의 7.5% 수준에 불과했던 인터넷 도서매출은 5년이 지난 2006년 24.1%를 기록, 2010년에는 30%를 넘어서면서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후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지역 서점들이 숨통을 텄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규모와 지역의 영세 서점 간의 격차는 해소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출판업 생태계의 급변세는 오프라인 서점들의 위기를 가져왔고, 편리하고 저렴한 온라인 도서 구매방식에 밀린 소규모 지역 서점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러한 도서유통 생태계 변화는 자본이나 큰 유통망에 의지하고 안고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진 '독립서점'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독립서점은 기존의 참고서와 교재 판매 위주의 서점과 달리 콘셉트와 개성을 기반으로 주제와 메시지를 담은 단행본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동네 작은 서점으로 한곳의 실제 상점을 운영하는 방식부터 다중 형태를 취하는 상점 등 형태가 다양하다. 기존 서점에서 사용하는 한국십진분류표(KDC)를 기준으로 서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 중 하나이며, 기성 출판사가 아닌 소규모 출판사에서 출판한 독립출판서적도 판매한다.



2016년 기준 대전지역에 5개에 불과하던 독립서점은 현재 20여 개로 늘어날 정도로 지역 곳곳에서 독립서점 열풍이 불고 있다. 음식과 자연, 여행, 생활문화 전반을 주제로 관련 분야의 책과 저자초청, 북클럽 등 독서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문화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립서점=우분투북스
왼쪽부터 독립서점 '유분투북스' 외부 전경과 내부 모습.<우분투북스 제공>
▲자연·음식·건강 '우분투북스'=유성구 어은동에 있는 독립서점 '우분투북스'는 '책과 건강한 먹거리로 도시와 농촌을 잇는다'라는 주제로 음식과 자연, 건강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도서와 2차 가공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서울에서 출판사와 도서관 관련 재단 등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이용주 우분투북스 대표는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2016년 지금의 서점을 열었다.

그는 "건강과 환경에 관심이 많다 보니 먹거리로 인해 불거지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며 "귀농·귀촌 인구가 늘지만 마땅한 판매처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도시인들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차와 건조식품 등 2차 가공 농산물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농가와 도시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철 농산물로 만든 요리를 공유하거나 농가를 방문해 직거래장터를 열고 농부들과 교류하는 등 농촌과 도시를 잇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왔다. 이 대표는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만큼, 이전에 했던 프로그램을 다시 살리고 보완해서 많은 사람과 공통 주제로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립서점=머물다가게
왼쪽부터 독립서점 '머물다가게' 외부 전경과 임다은 대표 모습. <머물다가게 제공>
▲지역 상품과 연계 '머물다가게'=대전 동구 대동에 자리한 독립서점 '머물다가게'는 출판사 '다니그라피'와 지역여행사 '진DOL'과 2019년 6월 오픈부터 함께 운영하고 있다. 관광지로 알려진 대동 하늘공원을 중심으로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소제동과 자양동 등에 사는 이들이 의기투합했다.

머물다기게는 지역작가가 만든 로컬상품과 대전을 소재로 한 엽서나 노트 등 굿즈와 관광상품과 함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지역출판사에서 만든 책을 판매한다.

국문학을 전공한 임다은 머물다가게 대표는 과거 독립출판축제를 기획하면서 맺은 지역 작가들과의 인연을 계기로 언론정보학과 심리학 등을 공부하며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임 대표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게 됐다"며 "독립출판을 하면서 직접 책을 쓰고 만들면서 대전의 창작자들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지만 한 달에 한 번 소규모로 모여 '머무는 밤'이라는 주제로 지역작가를 초청해 원데이클래스 형태로 색연필 드로잉, 아이패드 드로잉, 스티커 워크숍 등 아트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임 대표는 "참여율이 높진 않지만, 서점의 콘셉트에 맞게 삼삼오오 모여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역의 창작자들과 소통하며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서점=잠시서점
왼쪽부터 독립서점 '잠시서점' 이상은 대표와 서점 내부모습.<잠시서점 제공>
▲생활문화·사회적기업 '잠시서점'=대전 서구 탄방동에 자리한 독립서점 '잠시서점'은 '취미와 쉼'을 주제로 다양한 관련분야 서적을 판매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기업 주식회사 어모먼트 대표이면서 잠시서점 책방지기인 이상은 대표는 그림책 창작과 서점창업 강사로도 활동하는 문화예술교육기획 전문가다.

상담과 교육학을 전공한 그녀는 교육회사에서 교육 관련 프로그램 기획과 교재개발 업무를 해오던 중 번 아웃 격인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을 경험했다. 이 대표는 "이 길이 맞나,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생각이 들면서 교육하면서 아이들에게 던진 말들이 투영됐다"며 "슬럼프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됐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독립서점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잠시서점은 취미와 쉼 콘셉트에 맞게 책으로 하는 모임부터 원데이클래스 등 다양한 모임을 이어왔으며,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이 대표는 "서점의 문구가 '잠시 걸음과 시선을 멈추고.'다. 이름처럼 잠시 쉼을 얻고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서 지역에 좋은 영향력을 흘려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독립서점=책방정류장
왼쪽부터 독립서점 '책방정류장' 외부 전경과 서점 내부모습.<책방정류장 제공>
▲페미니즘·비건 '책방정류장'=대전 대덕구 중리동에 자리한 독립서점 '책방정류장'은 '다양성 존중'을 주제로 비건, 여성, 인권 등에 관한 큐레이션 서적들을 판매한다. 오민지 책방정류장 대표는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접고 쉬면서 온종일 책만 보고 싶어 집에 좋은 소파와 책상, 스피커 등을 들여놨지만 카페나 서점에서 보는 것과는 달랐다"며 "내가 원하는 공간을 직접 꾸며보자는 생각으로 서점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책방정류장은 '일일책방지기'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서점이기도 하다. 매번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책방을 지키며 누구나 올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이다. 실제 하루 동안 책방지기가 돼 손님을 맞이하고 책을 소개하는 체험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기자가 늘어 요즘은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오 대표는 "다른 지역 출장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서점 문을 닫는 게 마음에 걸려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에 4번 예약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방정류장은 비건과 인권, 여성을 주제로 토크와 소모임도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큐레이션이다. 비건, 여성, 인권 등에 관한 책들이 비치돼 있다"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주제로 많은 사람이 책방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게 목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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