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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전의 '미니공단' 원동 창조길…시대의 변화로 사라지나

1950년부터 '남선기공' 시작으로 여러 철공소 들어서
산업혁명과 개발논리로 이제는 30여곳 밖에 안 남아
기술직 관심 떨어져 후임 찾기도 쉽지 않아
대전의 역사적 자원인 특화거리 시 차원에서의 홍보 필요

정바름 기자

정바름 기자

  • 승인 2022-05-02 10:53
  • 수정 2022-05-0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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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대전 원동 창조길 철공소 특화거리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옛날엔 미니공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거리가 번창했지, 이제는 다들 떠나고 업체도 몇 개 안 남았어."

대전역 광장에서 역전시장을 지나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주말에도 '땅땅땅' 쇠붙이를 망치로 쳐대는 요란스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곳은 원동의 창조길 철공소 특화거리. 철도로 시작한 대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곳이다.

1904년 대전역이 생기고 원동에 하나둘씩 일본의 군수산업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방 후 1950년 군수산업 공장 건물에 '남선기공'이라는 대전 최초의 공업사가 생겼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수많은 철공소가 생겼다. 1975년 남선기공은 대덕구 대화동 산업단지로 이전했으나 남은 철공소들은 영업을 이어가며 호황기를 맞이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대전의 '미니공단'은 명맥만 남은 채 산업혁명과 개발논리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4월 30일 오후 2시께 방문해보니 철공소는 30곳도 채 남지 않았다. 기계 부속 가공과 수리를 하는 한 기술자는 "이 거리에 철공소들이 수두룩했지만 공영주차장과 인근에 아파트가 생기며 대부분이 이 자리를 떠나거나 폐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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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룡 장인 작업장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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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물 공정 작업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그럼에도 30년 이상 묵묵히 이 자리를 지킨 장인들은 주말에도 문을 열어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려 54년간 수작업으로 주물 공정 일을 해온 송기룡 씨는 매일 1500도에서 1800도 되는 용광로에 청동 등을 녹이고 주형을 제작해 기계 부품을 만든다. 대전 최초의 공업사인 남선기공에서부터 일을 시작한 그는 38년 동안 창조길에서 일해 왔다.

하지만 송 씨는 "이제 곧 2년 이내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구리 등 재료비가 비싸졌을 뿐더러 주물 대체품이 나오면서 일거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어 후임 찾기도 쉽지 않다. 송 씨는 "지금 주물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60대"라며 "요즘 주물공장도 기계를 돌리지 우리처럼 수작업을 하는 곳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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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행 장인 작업장 내부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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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행 장인 작업장 내부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프레스금형, 가공 일을 하는 조진행 씨 역시 기술을 전수받을 후임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조 씨는 "옛날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며 "요즘은 청년들이 기술을 배우고 싶지 않아해 아르바이트생 구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시계공장부터 시작해 52년간 기술직으로 일해온 조 씨는 창조 길에는 2012년에 들어왔다. 작업장에는 조 씨가 그동안 걸어온 세월 만큼이나 오래된 이름 모를 기계들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작업장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대전역 주변으로 역세권 개발사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창조길은 존치관리구역으로 남았지만 나중에는 개발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이곳이 개발되면 땅이라도 사서 공장을 짓거나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요즘은 갈 데가 없다"며 "꼭 개발이 아니더라도 역사가 깊은 곳인 만큼 시에서 이곳을 활성화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후계자를 키우기도 어려워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철공소 특화거리와 맞춤옷 특화거리 등 대전에 역사가 깊은 특화 거리와 장인들이 있는 만큼 숙련공에게 후계자 양성 등 지원과 거리 활성화, 홍보를 통해 관광 콘텐츠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명장회 대전지회 관계자는 "특화거리에 대한 홍보가 많이 필요해 보인다"며 "그래야 우리의 뿌리 산업들이 일본처럼 100년, 200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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