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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이 만난 사람]김영란 <암밍아웃> 공동저자

우송정보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리더십 코칭, 웰다잉, 부모교육, 인권 인성교육 전문 마스터
말기 암 이겨내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하다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22-05-2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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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밍아웃>(암에 걸린 사람이 암환자라는 것을 스스로 밝힌다는 ‘암’과 ‘커밍아웃’을 합한 신조어) 책을 공저한 김영란 우송정보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58)가 5월11일 수요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영된 <생로병사의 비밀>에 출연해 큰 화제를 모았다.

평생교육의 숲에서 리더의 길을 찾던 그녀, 날마다 변화를 꿈꾸는 아미(암을 통해 새로운 ‘앎’을 알아간 이들을 부르는 말), 김영란 우송정보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는 <암밍아웃>에서 암환자임을 선포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선보였다.

자아상의 치유,리더십 코칭,웰다잉,부모교육,인권 인성교육 전문 마스터인 그녀는 1년이면 수 백 차례 특강에 불려 다니는 인기강사였다. 불러주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마다 하지 않고 달려갔다. 그러나 몸을 혹사했던 탓일까. 3년 전 98세 친정 아버님과 86세 친정 어머님을 두 달 간격으로 여의고, 큰 슬픔에 빠졌던 그녀에게 청천벽력같은 암 선고가 내려졌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주원인일 터였다.



2년 전 난소암 4기 말 환자였던 그녀는 흉부와 대장, 비장으로 암이 전이돼 충남대병원에서 12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고, 6차 항암치료 후 표적 항암치료제를 복용 중이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두 시간 씩 맑은 공기를 마시며 트레킹하고 지인들 100여 명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서 카톡으로 보내는 일상 속에서 그녀는 암을 이겨냈고 건강을 회복했다. 지난 5월11일 수요일밤 10시 KBS 1텔레비전 <생로병사의 비밀>에 그녀의 이야기가 20분간 방영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모 시사일간지가 주최한 <신한국인대상>도 수상했다. 매일 매일이 감사의 연속인 그녀를 그녀의 자택에서 만나 그녀가 차려준 정성 어린 웰빙밥상을 마주하고 감사의 삶으로 암을 이겨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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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밍아웃
-김 교수님, <암밍아웃> 책은 어떻게 쓰시게 됐고, 지금 현재의 상황은 어떠신지요.

▲‘암밍아웃’은 암에 대한 커밍아웃입니다. 저는 지금 건강하게 잘 살아있습니다. 당당해지고 자신감 있어졌지요. 보령 안온재에 갔다가 암밍아웃 팀을 만났습니다. 제가 공저자로 참여한 <암밍아웃>은 이번에 세번째 ‘습관편’인데 2권까지의 암환자들의 이야기가 어둡고 칙칙하고 슬픈 게 아니라 너무나 밝고 환하고 유쾌해서 정말 넘넘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암은 죽을 병이 아니라 누구나 갖고 사는 디스크와 같은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암밍아웃 2권을 쓰신 분들은 웃기도 잘 웃고 너무 재미있어 반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책에 참여하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 책을 쓰는 과정은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파파실언덕과 보령 안온재와 서울에서 만난 이 분들은 저를 스타처럼 환대해주셔서 많은 감동을 받았답니다. 암환자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죠. 같이 참여하게 되니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책 속의 제 사진들은 모두 암밍아웃 팀들이 찍어주신 겁니다. 메이크업도, 사진도 모두 암밍아웃 회원들의 재능 기부에 의해 이뤄진 겁니다. 너무나 감사하죠. 아미북스 조진희 대표가 저를 초대해주셨습니다. 정말 영광스러웠습니다.

제가 2년 전 5월 중환자실에서 핏주머니 차고 한 달 넘게 입원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2년이 지난 2022년 5월에 복을 주셔서 너무나 감동스러웠습니다. 2년 전에는 하나님이 저를 피투성이로 만드시더니 이제 2년이 지난 지금은 영광을 주시네요. 난소암 4기 말에 대장으로 전이됐고 12시간 대수술 끝에 흉부와 대장, 비장을 잘라냈습니다. 2년 전 아팠을 때가 떠오르면서 하나님은 이 세상 것들을 이렇게 갚아주시는구나 깨달으니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지난 5월11일 수요일밤 10시 KBS 1텔레비전 <생로병사의 비밀>은 한밭수목원과 우송대 CEO 과정 강의할 때, ‘미리 하는 100세 연’ 등을 4일 내내 찍은 후 편집해서 나오게 됐습니다. 연이어 ‘신한국인대상’을 수상하니 각 방송과 언론사, 잡지사 등 근 열 군데에서 인터뷰 섭외가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제가 암을 이겨낸 것은 밝고 맑고 우직하게 ‘우보만리’로 이겨낸 것인데 장사치처럼 상업적으로 넘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인들과 소통하면서 나누고 싶었던 소중한 것을 훼손하고 상업화시킬 것 같아서 모든 인터뷰를 다 거절했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기회가 있구나 싶으면서도 하루하루 저 자신을 이겨냈습니다. 역경을 극복하게 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저를 홍보하기 위한 껍데기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아니라고 봤죠. 저 자신의 가치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교육자가 되는 거였습니다. 청소년문화 수업을 하는데 성폭력, 사이버폭력, 욕설, 왕따 문제를 조사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싶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나는 겁니다. 어른들이 잘 못 살아 미안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유산을 물려주는 게 미안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바로 부모 교육, 지도자들을 위한 교육, 학생들을 위한 교육, 노인들을 위한 교육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다운 어른, 본받을 어른이 없고, 꾸중할 어른이 없는 현실입니다.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성 나 있고 화나 있는 아이들을 보호해줄 어른도 없습니다. 어른들이 잣대인데 상업주의, 명예, 권력에 눈이 멀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합니다. 저는 인터뷰를 단호히 거절하고 소신 있는 교육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어른들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몸부림이죠. 그런 과정이 너무나 보람 있고 제 적성에 맞습니다. 말 잘하고 달변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가슴을 치면서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본받고 싶은 어른, 뒤따라 갈 수 있는 어른, 조금이나마 닮아가고 싶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거지요. 어른들이 다 공감할 수 있는 교육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명예와 인기는 다 부질없습니다.

전 이제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4시 30분. 전날 에너지를 소진한 노곤한 육체는 침묵의 강을 건너 새롭게 깨어납니다. 여명과 인사하며 때로는 거친 눈과 비도 뚫고 힘차게 첫발을 내딛습니다. 절망과 공포의 수렁을 벗어나 희망과 감사에 입 맞추며 1만 보 쯤 걷고 나면 알게 됩니다. 아, 내가 살아있다. 인생 2막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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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실언덕에서 화덕에 구은 피자를 자르고 있는 김영란 교수.
-김 교수님은 암 투병 중 파파실언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치유와 휴식과 쉼의 시간을 갖고 건강을 회복하셨는데요. 파파실 언덕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예. 그렇습니다. 제 마음의 안식처 파파실 언덕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전북 장수군 덕유산을 배경으로 해발 550 미터에 자리잡은 파파실언덕에는 1만 여 평의 너른 대지에 주황색 서양 저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햇볕은 따스하고, 공기는 청량하고, 덕유산 토옥동 계곡의 맑은 샘물은 시원합니다. 계절마다 다양한 꽃과 열매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며 멋진 볼거리를 선사하는 곳입니다. 주변 마을과는 100 미터 이상 떨어진 은신처로, 지친 육체와 영혼이 편안히 쉬며 질병을 이겨내기에 충분한 천혜의 자연환경이 준비돼 있는 쉼터입니다. 동쪽 하늘을 물들이는 여명 빛이 바랠 때쯤 따사로운 햇살이 저의 이마를 간지럽히듯 떠오르고, 싱그러운 바람은 저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갑니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촉촉한 이슬이 말라갈 때 쯤엔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귓가에 들려오고, 저는 한 마리 나비처럼, 밤하늘 수놓은 반딧불처럼 하루 종일 춤을 춥니다. 이 곳에서는 매년 북 스테이가 열리고, 다양한 융복합 학문의 토론회, 크로스오버 음악회 등 함께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인생극장이 펼쳐집니다. 이들의 흥과 재미를 돋우기 위해 파파실언덕지기님이 직접 만드신 화덕과 정자, 양어장, 큐브, 사우나 시설, 연못, 그네, 산책로가 손님들을 반깁니다. 모든 시설은 덤으로 제공됩니다. 누리고 즐기려는 자들의 차지가 됩니다. 파파실언덕의 주인인 훌륭한 인격자 언덕지기님과 언덕지킴이님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에 저는 살아났습니다. 그 분들은 저에게 생명의 은인입니다. 언덕지기님은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셨고 김앤장의 변호사셨지만 55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언덕지킴이 부인과 함께 고향 파파실언덕으로 내려와 지난 10여 년간 이 곳을 가꾸며 많은 사람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놓으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언덕지킴이님도 사회복지조리학과로 전공을 바꿔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며 숭고하고 아름다운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이 곳에는 일상의 고단함으로 쇠약해진 몸을 추스를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가 지천입니다. 무공해, 무농약을 지키는 언덕지기님과 언덕지킴이님이 정성으로 가꾸는 텃밭에는 향이 강한 부추, 아삭거리는 식감이 최고인 고추, 사람을 졸리게 만드는 상추, 아삭하고 달콤한 아스파라거스가 자라고, 햇빛과 바람은 돌나물, 쑥, 고사리를 키워냅니다.

언덕지기님이 유튜브를 보고 직접 만든 화덕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향이 풍겨나고, 원가를 따져보지도 않고 만드는 100 퍼센트 통밀빵은 풍미가 그만입니다. 언덕지킴이님은 하루 종일 종종걸음으로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다듬고, 씻어내어 유기농 무농약 밥상을 차려내느라 손에 물 마를 새가 없습니다. 사우나 화로에 장작불이 지펴질 때 쯤 이 곳은 사랑방이 되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꽃이 불꽃처럼 피어납니다. 이마와 목젖을 타고 흐르는 땀과 함께 하루의 피로가 씻겨 내리는 이 곳은 모든 사람에게 파라다이스, 천국입니다. 이 곳에서 쉬고 놀고 즐기다 보면 저절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가 되뇌어지고, 제 몸은 조금씩 살아납니다. 이렇게 몸과 영혼이 깨어나면서 치유와 회복이 시작됩니다. 파파실언덕지기님과 언덕지킴이님은 지난 1년 반 동안 저를 먹여주고 재워주셨습니다. 혼자 사색하고 운동하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제가 정말 사람 복이 많습니다. 제 주위에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 덕분에 암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항암 주사를 맞고 가발을 쓰고 다니면서도 선교단을 만들어 간증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사는 시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 분들의 투명한 인격이 반사되어 저에게 생명의 빛을 주시면서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이 세상에 작은 빛이 되고 싶습니다. 제게 중보기도해주신 분들 덕분에 제가 살아났습니다. 찬양단 활동은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제가 살아났습니다. 꽃 중에 사람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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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님은 성품이 참으로 따뜻하고 자상하고 사랑이 많은 분인데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인생은 사랑받으며 태어나 사랑하며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논산이라는 작은 도시, 시골 마을인 부창동에서 5남매 중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앞마당에는 감나무가 많았고 대추나무, 석류나무, 온갖 꽃들이 만발한 화단에는 정겨운 유년시절의 고운 추억이 있습니다. 인사를 잘하는 밝은 성격 탓에 동네 어른들은 저를 ‘감나무집 양념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호랑이 같은 성격의 할머니는 외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하신 아버지를 끔찍이 아끼셨고, 주변 사람들도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덕분에 아버지는 연세가 드셔도 늘 응석받이처럼 당신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는 편안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반면 저의 눈에 비친 엄마는 열아홉 어린 나이에 시집 와서 많은 농사일에, 식솔들의 밥에, 인부들의 참과 식사까지 챙기시느라 손에 물 마를 새가 없으셨고, 5남매 뒷바라지와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챙기시느라 고단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주일이면 교회 여전도회 회장으로 전도와 봉사에 앞장서셨고, 곱게 빗어 올린 머리와 깨끗한 한복차림으로 환한 보름달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과 격려의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시집살이 속에서도 엄마는 저를 부를 때마다 ‘사랑하는 딸’,‘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도 제 딸에게 ‘사랑하는 딸’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친구 편에 서는 바람에 호된 사춘기를 겪었습니다. 공부보다는 독서와 시작에 몰두했고, 교회 고등부 학생회에서 만난 쌍꺼풀이 짙은 꽃미남이 눈에 들어와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스물다섯에 결혼을 해 딸을 하나 낳아 저에게도 엄마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항상 저의 곁에서 저를 지켜주실 것 같던 엄마는 2019년 하늘이 유난히 푸르던 유월에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엄마만 의지하고 사셨던 아버지도 불과 2개월 만에 생을 마감하셨지요. 거의 동시에 두 분을 보내고 난 후 이별의 슬픔과 상실의 고통은 마치 날카로운 면도칼로 난도질당한 것처럼 아팠고, 아픔이 잦아들자 어두운 그늘이 되어 가슴 깊이 드리워졌습니다. 엄마는 어디서 사랑을 공급받아 그토록 뜨겁게 사랑을 나누며 살다 가셨을까요? 생의 초월자처럼 사셨던 엄마의 낙관성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따라 엄마가 목마르게 그립습니다. 열아홉에 시집오신 엄마는 85세에 작고하시기까지 무서운 할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하시면서 수십 명의 일꾼들 밥을 해주시면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저주하거나 불평하신 적이 없습니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평생 일이 끊이지 않으신 엄마는 저에게 전화하실 때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우리 사랑하는 이쁜 딸,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신세 한탄하지 않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DNA는 엄마에게서 받은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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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님은 지금까지 너무나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오셨는데요. 뜨거운 가슴으로 보냈던 몰입의 시간, 치열한 삶의 증표들을 들려주시지요.

▲저는 평생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는, 자랑스러운 ‘워킹맘’이었습니다. 하루를 분 단위, 초 단위로 쪼개어 1년 365일, 꽉 채운 스케줄을 갖는 것이 제 삶의 목표였고, 자존감의 척도였습니다. 나태함과 몽상은 사치였죠. 무사안일하게 사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므로 철저히 저에게 엄격해야 했습니다. 36세에 대학에 진학한 만학도로서 지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미친 듯이 책을 읽었고,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것이 저의 불확실한 미래를 밝게 비춰줄 담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에너지 탱크’라고 했고, 누군가는 제게 무시무시한 ‘철녀’라는 닉네임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논문을 쓰면서 밤을 꼬박 세웠고, 1년에 280~300회의 강의를 했습니다. 하루에 2탕, 3탕을 뛰었지요. 음대 대학원 다니는 딸아이의 수업료가 워낙 비싸서 딸아이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 흔한 감기도 앓았던 적이 거의 없던 저는 늘 건강을 자신했습니다. 사실 제 몸을 돌볼 시간도 낼 수 없었습니다. 유난히 불러오는 아랫배의 거북함 때문에 ‘나잇살이 찌나?’ 의아해하며 예약했던 병원도 다른 일정이 겹쳐 3번이나 연기한 끝에 갈 수 있었습니다. 복부팽만이려니 하고 찾아간 병원이었는데 복수 속에 퍼져 있는 돌연변이 세포가 발견되었고,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검사 결과를 듣던 날, 진솔한 의사 선생님의 말이 제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 ‘열정의 화신’이라 불리던 제 삶에 ‘정지’,‘멈춤’이라는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쉼’으로 BC(before cancer, 암 이전의 나)와 AC(after cancer, 암 이후의 나)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습니다. 때로는 후회와 미련이 저를 옥죄어오지만, 힘겹게 지탱해 왔던 삶의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던 어느 날 저의 질병은 많은 사람들에게 핫이슈였습니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해올 때 알게 된 것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제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함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신의 일인 양 기도해주었습니다. 여러 곳의 중보 기도방에서 기도의 연결은 끊이지 않았고, 수술실과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온 몸으로 전해지는 중보기도의 열기가 매 순간 호흡하듯이 삶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거금 1000만 원을 약값에 보태 쓰라고 대가 없이 주던 친구부터, 정말 많은 분들이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아낌없이 보내주셨습니다. 사랑이 단비처럼, 감동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니 저는 그분들로부터 사랑의 빚을 진 자입니다.

수술 후 6개월 정도 지나면서 값없이 받은 사랑에 감사해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과 ‘가디너스(God in us)선교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찬양과 말씀, 성시, 그리고 죽음 가운데에서 제가 만난 하나님을 증거하는 시간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었고, 단원들에게도 감격과 감사로 다가왔습니다. 어제와 같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축복 된 삶인지 고백하며 예배했습니다. 수도 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 생과 사를 건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전하고, 걸을 수 있는 것, 볼 수 있는 것,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전할 때 성도들도 울었고, 저도 울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을 통해 처음 신앙을 회복하는 치유 집회가 되었습니다. 다시 살아나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맛보고, 간증하고, 고백할 수 있다는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은 매일 찾아와 기도해주셨고, 저린 팔다리를 정성껏 주물러 주셨습니다. 이러한 큰 사랑의 힘은 수술 후 혈압과 맥박이 빨라지는 위험한 순간으로부터 지켜주었고, 항암을 이길 수 있도록 자생력을 주었고, 기도의 은사를 생생히 체험하게 해주었습니다. 기도의 힘은 치료자 하나님의 손을 움직였고,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중보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원천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도 그렇게 평생의 동행으로 중보기도자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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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깃털이 가장 눈부신 김 교수님만의 시간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암과 친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는 감당해야 할 많은 일상이 있습니다. 학생들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온·오프라인 강의부터 일반 주부와 똑같은 장보기, 음식준비, 집안 청소 등 소소한 집안 일과 친구, 지인과의 만남 등 일상이 끝나가는 오후 8시30분이면 저는 표적치료제 ‘제줄라’를 먹습니다. 그리고 저의 ‘밤’이 시작됩니다. 치료제의 특성상 복용 후 약간의 빈혈과 혈소판 감소에 의한 무기력증이 발생합니다. 숙제처럼 하루를 마치고 나면 지친 육체는 물먹은 휴지처럼 풀어지고 휴식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때때로 저를 흔들어 깨우는 일상의 고민과 번뇌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날이면 고통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기도 하지만 하루 동안 지친 영육 간에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걷습니다. 전날의 일상을 돌이켜 생각하며 불편했던 감정의 찌꺼기는 날려버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캔버스에 하나씩 그려나가며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시작합니다. 이 시간은 스스로를 치료하는 시간입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직립보행을 통해 살아남았듯이 개복수술을 통해 유발될 수 있는 ‘장폐색’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걷고, 면역력의 원천이 되는 허벅지의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걷고,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한 모습으로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걷습니다. 함께하는 동행지기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저 자신을 연단하는 치료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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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긍정적 태도로 삶을 살아오셔서 ‘긍정의 화신’이라고 불리시지요?

▲‘어떠한 형편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지,’ ‘소중한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마음에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야지’, 결단하며 단단한 오기로 내가 나에게 말을 겁니다. 조금만 넋 놓고 있으면 내게 달려오는 화살,

‘불안아! 나는 너를 가만히 내 속에 깊이 느껴볼 거야. 하지만 널 조용히 떠나보낸다.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불현듯 찾아오는 두려움아! 당당한 내 웃음에 주눅이 들어 의기소침해질 너를 날려 보내버린다. 잘 가거라. 소스라치듯 내게 덤벼드는 분노야! 너의 시간은 이미 끝이 났단다. 내 마음에는 이미 기쁨이 넘치니까. 스미듯이 살짝 내 속에 들어와 자기 집처럼 사는 우울아! 그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려주고 싶지만 내 안에는 감사가 풍성해’

이렇듯 인생은 재해석이요, 제가 선택한 결과물의 총합입니다.

스물다섯에 결혼해 딸아이를 낳은 후 서른 여섯 살에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한민대에 가서 사회복지와 선교신학 공부를 했고, 그 이전에 미국에 가서 몬테소리 교육 자격증도 따왔습니다. 졸업하고 바로 목원대 대학원에 가서 사회복지학과 신학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심하게 시키셔서 탈출구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 가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댁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지요. 대학원 다닐 때부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삶의 역경과 근력이 강의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울림이 있는 강의를 하면서 탁월한 강연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저술가가 꿈이자 비전이었습니다. 2017년도에 건양대에서 치유선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때 공부를 시작한 셈입니다. 공부에 대한 결핍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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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님은 이제 마음껏 활개 치며 놀기를 선택하셨다지요?

▲큰 바위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그때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휴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제가 무척이나 낯설었지만, 쉬다 보니 그것이 삶의 참된 여행이었고, 그 쉼이 또 다른 창의성을 가져다주는 인생의 소중한 여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쉬어도 됩니다. 아무 것도 안 해도 됩니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그 무엇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되는 증명서를 받았고, 잘하지 않아도 되는 쉼표를 얻었습니다. 누군가를 만족 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 몸을 살피는 일, 그동안 일하느라 방치했던 제 몸을 잘 보호하고, 영양식으로 저를 채우고, 가장 좋은 음식과 환경을 제게 제공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암은 제게 정말 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제부터 전 놀 겁니다. 노는데 천재가 될 겁니다. 마음껏 쉬고, 놀기도 하고, 먹고 잘 겁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로움이 알 수 없는 충족감을 주는 것은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는 저에 대한 신뢰인지 모릅니다. 피해갈 수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매일 저를 온전한 쉼 가운데 나아가도록 토닥여주고 안아주고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는 겁니다. 제가 저를 인정해주고 제가 저에게 한없이 잘해주니 제가 저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쉼의 열쇠를 얻은 것 같아 함박웃음 말갛게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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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님, 최고의 선택이 ‘자족’이라고 하셨지요?

▲어느 날 불쑥 허락도 없이 제게 쳐들어온 폭군 같은 암, 그것은 제게 겸손의 몸짓과 숙연한 자세와 태도를 갖게 했습니다.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것은 그 누군가의 수고로 얻어진 대가였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편안한 일상은 병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남은 생애 가장 큰 소원입니다. 높아지기보다 깊어지며 성장과 성숙이라는 현재 진행형의 목표를 다시 세워봅니다. 지금 가진 것에 자족하는 마음 자세를 매일매일 연습합니다. 제게 찾아온 낯선 질병이 저의 현주소임을 인식하고, 제가 받은 복을 세어보기 시작합니다. 큰 복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니 모든 것에 감사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아직 저에겐 시간이 있습니다. 펄떡이는 심장이 있고, 충만한 감정에 어린 미소가 있고, 소중한 가족이 있으니 저는 다 가진 자입니다. 제 남은 인생은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죽음에 직면해 두려움에 떠는 누군가를 맘껏 안아주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기어코 건너가고야 말 저의 어깨를 내어주어 함께 더불어 큰 숲을 이루고 싶습니다. 저는 넘어져도, 엎어져도, 햇빛처럼 찬란하게 일어서고 있습니다.

김영란
-김 교수님은 매일 아침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감성 talk, 감사 talk’를 보내주시는데요. 감사 일기 쓰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주실까요?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이를 인정하면 그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긍정적 부분은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며 감사하고, 부정적인 부분은 더욱 부정적인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았음에 감사합니다. 감사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을 말하듯이 글로 옮겨 지인들과 나눕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말처럼 1000번 넘게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있는 ‘감사 일기’는 오늘의 저를 살리고, 살아있는 오늘이 최고의 날임을 선포하는 시간입니다.

감사일기를 쓰려면 먼저 감사 일기장을 마련한 뒤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할 일 3~5가지를 적습니다. ‘~해서 감사합니다’라고 적고 왜 감사한지 이유를 작성합니다. 의학적으로도 명상, 자기최면,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보다 ‘일상에 감사한 일이 참 많구나’를 느끼는 것이 몸과 마음을 긍정적인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 일기를 적어도 3개월간 지속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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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님의 미래는 어떠실까요?

▲‘암’이라는 불청객이 어느 날 저를 찾아왔습니다. 유약한 존재인 인간에게 소리 없이 찾아온 한계상황이었죠. 끈질긴 생명력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낸 인동초처럼 태풍과 천둥, 작열하는 햇빛을 이겨낸 대추 한 알처럼 잘 견디고 버텨내어 열정의 작은 불씨를 피워 후배 암 환우들과 함께 손 잡고 나아갈 소망의 끈을 전달하는 이야기꾼이자 영적인 저술가로 살고 싶습니다.

교육적인 소신을 걸고 혁신시켜주고 울림을 줄 수 있는 스승, 저의 남은 생의 좌표이기도 합니다. 교육의 힘이 너무너무 크고 이게 가장 큰 인생의 학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 4일 오후 2시 유성구 봉명로 27-27 라미컨벤션웨딩홀에서 '이계필, 김영란 부부의 미리 해 보는 백수연' 을 한 겁니다.

생존 이별식 제목을 '미리 해보는 백수연'으로 바꾸고 특별한 작은 파티를 열게 되었습니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 마지막 촬영 날 암 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드리고 싶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고 이별은 이유가 없듯이 KBS 작가 인터뷰에 무엇이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었느냐는 질문에 사랑이 답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동안 수도 없이 받은 조건 없는 사랑들이 감사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내가 단단하게 설계하며 살아왔던 삶의 의지, 낙심과 좌절의 나락에서 포기하지 않고 절벽을 오르던 순간들,나와 같은 고통의 늪에서 슬픔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한 줄의 빛이 되고자 찍어두었던 영상, 살아야 한다는 끊임없는 투혼의 흔적,암을 처음 발견해 준 의사,오랜 임상에 있었던 소울메이트,사랑해 준 벗들의 응원 격려,생명의 은인들입니다. 기도의 화살,중보의 메아리들,음식으로 날라다 주신 손길, 매일 보내는 지루한 감사일기를 읽어주고 응답해 준 정성, 이 모든 것이 제2의 인생을 다시 살게 된 생로병사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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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실까요?

▲<암밍아웃 습관 편> 따끈한 책이 출간되었는데 디자인도, 사진도, 편집도, 책의 질도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공동저자 한 분이 이 책의 출간을 결국 보지 못하고 이 땅의 소풍을 끝내고 가셨기에 받아든 책이 더 애틋합니다. 함께 집필하며 지내는 동안 하루라는 선물은 눈부셨고, 걷고 먹고 웃는 이 순간을 우리는 기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그는 옹골찬 찰나를 보냈고, 우린 그 순간들이 축복의 나날이라 고백했습니다. 쉰 살을 맞이하는 그는 짧게 살았지만 삶이 황홀하고 꿈결 같음을 기록하였고,‘암’이라는 절망을 이겨낸 가슴으로 써 내려간 이 소중한 책, 삶의 폭풍 앞에 과감히 맞서는 도전장은 절대 감사입니다.

암은 불치의 병도 아니고 누구나 갖고 있는 질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 암환자로 살 거니, 김영란으로 살 거니’라고요. 뇌의 채널을 바꾸는 거죠. 힘들어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저의 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제가 ‘성품’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긍정적인 태도로 행동하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난관이 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을 일찍 깨닫기 참 잘했습니다. 우울감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기분전환을 위해 화장을 곱게 하고 칙칙하지 않도록 가발을 쓰고 예쁘게 꾸미고 살려고 합니다.

저는 새벽 5시면 무조건 나가서 갑천 변을 1시간 20분 동안 걷습니다. 1만 보를 걷게 됩니다. 수술 후 장폐색을 막기 위해 걷기 시작했지요. 새벽 5시에서 6시 반에 항상 걷다 보니 면역성 증진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항암 치료제 ‘제줄라’도 보험이 적용돼 큰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돼 감사합니다. 암에 대해 커밍아웃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 있으니 무한감사입니다. 당당함, 담백함, 명예, 인기에 따르는 마음은 다 부질없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상관없이 토, 일요일에도 상관없이 1년에 290~300회의 강연을 다녔는데 강사로서 최고치를 찍은 셈입니다. 입맛이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소통할 줄 아는 게 중요하죠.

믿음의 산실이 가장 큰 과업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을 한명 한명 안아줍니다.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칭찬도 많이 해줍니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제 작은 소신은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제 수업시간만큼은 자신감이 충만해질 수 있도록 칭찬하고 격려해줍니다. 안아줄 때 진정성이 느껴져 같이 울어줬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누구를 보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 된 종이 되고 싶습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편집위원(국장)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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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교수는 누구?

▲1965년 논산 출생. 쌘뽈여고, 한민대 졸업. 목원대 사회복지학 석사, 건양대 치유선교학 박사.

현 우송정보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충남도교육청 건강가정지원센터, 남부평생학습관, 대전지방경찰청, 충남육아종합지원센터 부모교육 전문강사,국가보훈청 인성교육 전문강사,대전시 동구 인권상담관,동구청 평생학습협의회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

전 꿈샘어린이집 원장(20년 운영),어울림 평생교육원 원장, 전 논산 YWCA7대 8대 회장,논산시재정공시 재정계획 심의위원.

대한민국 탑리더스 교육부문 대상 수상, 2022 올해의 신한국인 교육인 대상 수상.

저서로 <노년기 우울과 소외감에 미치는 영향연구> 석사 논문(2006),< 다시 쓰는 사회복지학 개론 - 21세기사 - 공·편저(2007)>,시집 <사랑을 연습하세요>(2011, 창조문예),< 父母敎育 이노베이션을 통한 父母의 否定的 情緖에 관한 硏究>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회지 논문(2016),<한국형 12성품 교육을 바탕으로 한 부모성품교육프로그램이 부정적 정서에 미치는 영향> 박사 논문(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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