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우리 지역 언론들은 한밭 대전이 일제 강점기 생긴 근대 도시라고 하여 문화가 없다고 했다. 선배 기자들은 '문화 불모지'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왜 선배들은 소주잔을 기울일 때마다 대전에 문화가 없다고 비하했을까.
필자는 요즈음 지인, 선후배들과 구 도심 은행동으로 나가 만나는 시간이 많다. 굳이 이 곳을 선택하는 이유는 경기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 모임에는 언론계 선후배 혹은 교수 출신 원로들이 참석한다. 그런데 이 자리의 담론은 대전의 문화전통에 관한 것들이다. 대전이 가장 훌륭한 문화전통과 인맥을 지녔다는 것이다. 문학, 미술, 그리고 국악까지 기록될 만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문학부터 생각해 본다. 최고 시인이었던 고(故) 정훈, 한성기. 박용래 시인을 비롯해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대전에서 살았다. 선배 언론인들 가운데는 항상 눈물을 글썽이던 소녀 같았던 박용래 시인의 일화를 들려주곤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시단(詩壇)의 거목 고(故) 정훈 시인은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오장환, 이육사, 신석초, 서정주, 박재륜, 윤곤강 등과 함께 시 '유월공'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이어 중등 교과서에 '춘일' '밀고 끌고' '동백'이 게재되었다. 90년대 초까지 대전에 살면서 원로시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올해 처음 정훈문학제가 대전문화원에서 열린 것은 뒤늦게라도 기쁜 일이다. 이 문학제에는 많은 후배 문인들과 충청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미술계는 한국화가 고(故) 심향 박승무, 서양화가 이인영, 문자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고암 이응로 화백이 대전 출신이다.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을 세운 고(故) 임윤수 선생은 중도일보에서 기획위원으로 있으면서 언론발전에도 한몫을 했다. 이 분이 공주시에도 시립 연정국악원을 세웠다. 이처럼 훌륭한 문화예술인이 많았던 곳이 또 어디 있을까.
필자는 서울 인사동과 종로 3가 익선동의 성공담을 듣는다. 이 곳은 주로 음식점과 옷가게, 커피숍 등이 밀집되어 있다. 익선동은 구 한옥들을 개조하여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지역이다. 그런데 평일에도 인파가 끝없이 몰려든다. 전국의 젊은이들 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이 찾기 때문이다. 익선동 인근의 '송해 거리'는 실버들의 광장이다. 60~80대 노인들이 멋지게 차려 입고 데이트를 즐기느라 식당, 술집, 노래방마다 만원이다. 도로를 하나 건너면 화랑들이 밀집한 유명한 전통문화거리인 인사동이다.
대전 0시 축제가 열린 은행동 목척교 중앙시장 일대 상가 골목은 대전문화와 예술향기가 살아있는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건물만 단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는 친절하고 정겨운 골목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전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맛집, 흥겨운 음악 페스티벌 등 볼거리도 많아야 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목척교 인근에는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처럼 많은 화가들이 찾아와 그림을 그리는 명소로 조성하면 어떨까.
대전시는 성공한 전국의 문화도시와 외국의 거리도 벤치마킹해야 한다. 필자는 대전 60년대의 정겨운 풍물시장의 모습도 재현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봤다.
이장우 대전시장이 영국 에딘버러 축제가 열리는 도시를 방문 중이라고 한다. 대전역 중심의 구도심이 세계적인 명품 문화거리로, 전국 제일의 '0시 관광지'로 성장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한평용(명예경영학박사. 청풍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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