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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스위스인의 지혜

이성만 배재대 교수

이성만 배재대 교수

  • 승인 2017-04-10 14:13

신문게재 2017-04-11 22면

▲ 이성만 배재대 교수
▲ 이성만 배재대 교수
우리가 알고 있는 스위스는 어떤 나라일까? 초콜릿과 커피의 나라, 유럽여행의 끝판 왕, 알프스 하이디의 나라 등등 긍정적인 것들뿐이다. 초콜릿도 커피도 스위스 브랜드가 세계 최고라고들 하지만, 정작 스위스는 그 원료를 생산한 적도 없고, 생산하지도 못하는 나라다. 가진 것이라곤 척박한 자연밖에 없던 나라가 세계 최고의 강소국이자 여행지가 되었다. 19세기까지도 ‘하이디’가 독일로 식모살이를 가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나라가 어떻게 20세기 중반부터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될 수 있었을까?

우리네 과거는 스위스의 역사와 많이 닮았다. 주변 강대국들에게 시달린 형국은 더욱 비슷하다. 오늘날의 스위스도 1291년에야 태동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윌리엄 텔’ 이야기는 스위스가 발상지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세력 확장에 대항해 스위스 최초 3주의 대표가 뤼틀리 언덕에 모여 ‘영구동맹’을 맺는 것으로 귀결된 스위스 건국 이야기다.

스위스는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가난 때문에 다른 나라의 용병으로 팔려가서 돈벌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스위스는 특유의 근검절약정신과 실사구시정신으로 식품, 시계, 섬유, 금융 등의 산업을 발전시켜 국민소득 7만 불을 훌쩍 넘어선 최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스위스는 일자리에 관한 한 완전고용에 가까운 나라다. 노사분규도 거의 없다. 자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의 청정국가이지만 원전도 애용하는 나라다. 우리는 어떠한가? 늘어나는 실업률과 일상화된 극한 노사대립,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에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요원한 대한민국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복지선진국(?)이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스위스는 국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도 없고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시스템도 없다. 그럼에도 빈곤층도 가난의 대물림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국론을 모아서 비생산적인 복지시스템을 버리고 적지적소에 지원하는 복지시스템을 가동시킨 때문이다. 그러니 복지시스템에 기생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교육은 시스템만 보면 세계적이다. 자고나면 시스템이 바뀔 정도로 시장 친화적(?)이다. 입시시장에 최적화된 사교육도 세계적이다. 스위스는 어떠한가? 주가 26개나 되고 국어도 4개나 되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다. 주마다 학제가 다르기도 해서 전학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를 아인슈타인으로 키우고 싶으면 스위스로 가라고 한다. 인구비례로는 노벨상 수상자를 최다 배출한 나라가 스위스다. 국가가 인정하는 대학교도 세계적인 연방공과대학 2개와 일반 국립대학교 10개, 합쳐서 12개교밖에 없다. 고등학교 학생들도 2/3는 대학을 가지 않고 직업을 선택할 정도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스위스의 이러한 성장의 밑거름은 무엇일까? 스위스식 통합정신이다. 앞서 말했듯이 스위스는 민족구성이 복잡하다. 독일계, 프랑스계, 이탈리아계, 레토-로망스계 등이 모여 만든 다민족 국가다. 그러니 국어도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레토-로망스어 등 4개나 된다. 게다가 스위스는 미국과 같은 연방제 국가다. 미국의 주와 비슷한 26개의 ‘칸톤’들이 모여 스위스를 구성한다. 분열되기 쉬운 조건은 다 갖춘 셈이다. 그럼에도 스위스는 이런 다양성의 장점을 유지한 채 통합의 지혜를 발휘하여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구축하였다. 스위스식 국가 통합정신은 우리의 고질적인 ‘분열정신’을 혁파하는 좋은 지혜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경제의 높은 해외의존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경제양극화, 기업 간 균형발전, 청년실업과 고용불안, 심각한 사회갈등, 고비용 저효율의 교육시스템 등 수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선진국에의 진입도 올바른 리더의 선택과 지혜의 통합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천하의 제갈량도 부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집사광익(集思廣益)’을 쓰지 않았던가. 조정과 백성에게 도움이 되어야 훌륭한 대신이라 생각했던 제갈량은 많은 사람의 지혜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다스려서 모든 것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기다린다, 스위스식 통합정신의 지혜로 21세기 한국을 빛낼 ‘제갈량’을!

이성만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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