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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 조현병, 가두는 게 능사는 아니다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19-05-01 10:12
  • 수정 2019-05-01 10:18

신문게재 2019-05-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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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사는 마을 옆 동네엔 '이상한' 아저씨가 살았다. 그의 이름은 '안가 미친 이'. 성이 안씨여서 어른들은 그 아저씨를 그렇게 불렀다. 아이들도 당연히 '안가 미친 이'로 부르곤 했다. 그 아저씨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슬금슬금 피하며 뒤에서 "야, 안가 미친 이 간다"며 소근거렸다. 간혹 남자애들은 그 사람한테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행색이 늘 지저분했지만 표정은 평온했다. 어떨 땐 누구한테 얘기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해코지하는 건 없었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원래는 머리가 좋았는데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미쳤다고 했다. 그는 '미쳤다'는 이유로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미쳤다는 의미는 조현병을 얘기하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들의 정신세계는 어떠할까. 『엄마를 요리하고 싶었던 남자』라는 책이 있다. 제목이 너무 엽기적이어서 처음엔 코믹 장르인 줄 알았는데 제목처럼 끔찍한 내용이다. 이 책은 현대사회가 낳은 인간의 광기에 대한 관찰기다. 정신이 망가진 이들 중에는 여기 나오는 환자들처럼 극단적인 광기에 사로잡혀 괴물이 되기도 한다. 12편의 사례가 나오는데 이 책의 제목이 된 '엄마를 요리하고 싶었던 남자' 뤼드비크는 엄마를 죽이고 머리를 잘라 요리했다. 머리에 여러 가지 향신료를 뿌려 냄비에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뤼드비크는 망상장애 혹은 편집적 망상을 동반한 조현병 환자였다. 이 환자는 악령에 사로잡힌 어머니를 죽이라고 하느님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모든 정신질환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다.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는 성장과정에서 문제가 된 경우다.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는 엄격하고 아들을 자주 야단쳤다. 사도세자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나인들의 손에 의해 길러졌다. 영조는 세자의 위엄을 세워야 한다며 아들을 멀리 뒀다. 아들이 갈망하는 애정, 칭찬에 인색한 냉담한 아버지 영조. 무수리 엄마를 둔 영조의 콤플렉스가 아들을 문제아로 만든 것이다. 창조성을 요하는 예술가들의 정신질환은 어떤가.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는 환청에 시달리다 권총자살 했다.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전혜린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깨지기 쉬운 섬세한 감성은 창조의 원천이 되지만 그 예술가는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인 셈이다.

요즘들어 조현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조현병 환자가 일으킨 살인사건 때문이다. 지난해 말 임세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교수의 죽음과 4월 진주 아파트의 20여명 사상자, 그리고 창원 청년의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은 끔찍했다. 5명이 죽고 부상자도 15명이나 됐다. 그리고 며칠 전에도 부산에서 친누나를 무참히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모든 사건이 조현병 환자가 일으켰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공분했다. 당장 중증정신질환자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과연 이들을 가두는 것만이 능사일까.

『엄마를 요리하고 싶었던 남자』를 읽고 가슴이 뭉클했었다. 저자 마갈리 보동 브뤼젤은 프랑스의 정신의학 전문의와 법의학자로 오랫동안 정신질환 범죄자를 치료했다. 브뤼젤은 이 책의 사례자들이 잔혹한 살인마지만 범죄자가 아닌 치료받아야 할 환자라고 했다. 위험한 질환자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약한 존재이자 인류의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이들은 연민의 대상이자 친구였다.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현대인의 정신질환은 증가하고 있다. 이참에 우리도 조현병 환자를 체계적으로 치료·관리하는 국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들을 혐오하고 낙인 찍는 데에만 열을 올릴 것인가. 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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