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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 인간화와 명성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19-10-02 11:22
  • 수정 2019-10-02 21:16

신문게재 2019-10-03 14면

교회
내가 다닌 대학은 기독교재단의 학교로 '기독교 입문'이라는 필수 교양과목이 있었다. 대학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채플도 의무였다. 당연히 기독교신자가 아닌 학생들은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쉽고 후회되는 게 있다. 그때 송기득 신학과 교수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청강이라도 했을 것이다. 송기득 교수가 얼마전 세상을 떴다. '시대의 선지자'로 불린 그는 실천적 신학자였다. 그의 고귀한 향기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 제자인 유장환 목원대 신학대학장에게 답을 구했다. "한국사람으로서의 한국신학을 강조하셨다. 민중신학을 토대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설파하신 스승이었다." 그는 진보적인 관점으로 교리를 재해석하고 구도자 입장에서 토론과 논쟁을 즐겨 학생들의 눈을 뜨이게 했단다. 유 학장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회상했다. "스승님은 사람다움을 강조하셨고 핸섬하고 멋진 남자이기도 하셨다"고.

왜 그는 신학자로서 '인간화'의 실현에 천착했을까. 민중신학, 우리의 신학, 토착화 신학에 매달린 그는 사람다운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주는 사람, 그가 바로 메시아라는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철학도는 민중에게서 예수를 읽었다. 노동자 민중이 인간화의 역사를 열어가는 주체라고 보았다. 그에게 젊은 날 숱한 고난과 방랑은 드넓은 보편적인 세계에 대한 시야를 갖게 한 값진 경험이었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행로에서 그는 구원을 얻었다고, 그것이 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몸으로 살아내는 철학적 신학을 구현한 셈이다. 철학은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학문이다. 그러니 경직된 교리로 신의 은총을 갈구하는 보수적인 교회와의 갈등은 불문가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에서, 노동자 전태일에게서, 광화문촛불광장에서 '인간화신학'의 뜻을 넓혀보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는 신학은 인간에 대한 앎과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가 하면 자본주의 체제의 보수 교회들은 물신숭배와 부자세습 체제 굳히기에 혈안이 됐다. 결국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이 사실상 허용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은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가 2021년부터 명성교회 담임 목사를 맡도록 결정했다. 대기업의 경영승계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이번 결정이 교단 헌법마저 무시한 초법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애초 교단 재판국은 지난 8월 초 명성교회 부자세습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결정이 뒤집어졌다. 수습안에는 교회법과 국가법에 근거해 고소, 고발 등도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교단이 초대형 교회의 위세와 보이지 않는 협박에 굴복했다는 걸 누가 모를까. 명성교회는 신도 수가 10만명에 한 해 헌금이 400억원이나 된다. 웬만한 기업과 맞먹는 규모다.

한국의 개신교는 해방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도 있다. 그런데 그 열렬한 신심이 성장에 부합하는 성숙에 미치지 못하는 데에 비극이 있다. 독선과 아집이 난무하고 반성적 성찰은 더더구나 찾아보기 힘들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공허한 외침은 자신들의 종교를 천박한 신앙으로 떨어뜨렸다. 이제 교회는 세상 위에 군림하려 한다. 권력 가까이에서 혜택을 입었던 한국 교회가 아예 권력 자체가 되려 한다. 보수 개신교는 극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대놓고 특정 권력의 시녀를 자처하고 있다. 이들의 정치세력화야말로 반신학적 행위다. 세속적 탐욕으로 일그러진 한국 개신교의 자화상. 송 교수는 신 없는 인간의 구원을 꿈꿨다. 전통적 그리스도교가 반 휴머니즘을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를 버렸다. 권력, 부, 명성 따위가 인간의 참된 구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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