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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좋은 죽음

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김성현 기자

김성현 기자

  • 승인 2020-07-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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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대전에 살면서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시간이 날 때 국립현충원을 찾는 것이 필자에게는 큰 즐거움 중에 하나다. 잘 가꾸어진 현충원 숲길을 걷고 내려오는 길에 묘지의 비석들을 살펴보면 독립운동, 한국전쟁, 월남전 등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만날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신 호국영령의 의롭고 좋은 죽음을 대하면서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죽어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좋은 죽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미국의 한 연구팀이 미국, 영국, 한국, 일본 등의 좋은 죽음에 대한 논문을 분석했는데, 좋은 죽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임종과정 선택, 통증 없는 죽음, 종교적 영적 안정, 감정적 웰빙, 삶의 완성, 치료 선호, 품위, 가족, 삶의 질, 의료인과의 관계 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이자 신학자인 스캇 펙 박사는 그의 저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서 훌륭한 죽음을 첫째는 살인이나 자살이 아닌 자연스러운 죽음, 둘째는 육체적 통증이 없는 죽음, 셋째는 용서와 화해가 잘 이루어진 죽음, 넷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죽음, 다섯째는 작별인사를 하는 경우로 정의했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2017년 연세대 간호대학 연구에 의하면 살아 있는 동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적절한 죽음 준비를 하는 것이며, 의료진과 상의해 무의미한 삶의 연장 없이 존엄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고, 임종 후에는 남은 가족도 긍정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좋은 죽음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발표했다.

2018년에는 서울대 의과대학의 윤영호 교수팀이 전국 12개 병원의 암 환자, 가족, 의사, 일반인을 대상으로 좋은 죽음에 관해 조사 분석해 발표했는데, 좋은 죽음의 조건은 첫째 가족에 부담이 되지 않는 것, 둘째 가족과 함께 하는 것, 셋째 미처 끝내지 못한 일 해결, 넷째 통증으로부터 해방, 다섯째 의미 있는 삶 등이었다.

좋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서구와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면, 서구에서는 스스로 어떻게 죽을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죽음의 조건이고, 우리나라는 가족에게 부담 되지 않고, 가족과 함께하는 것을 좋은 죽음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또 다른 시대적인 주제는 통제와 자율, 즉 죽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유럽에서는 노인의 죽을 권리 운동, 합리적 자살 등이 활발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신체적 노쇠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독립성과 개인의 존엄성을 상실했을 때, 전문적인 관리나 가족 및 사랑하는 사람의 보살핌에 의존해야만 할 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경우 안락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죽음이란 두려운 것인데, 과연 좋은 죽음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죽을 수 있을까? 학자들은 죽음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문제도 아니고, 성취해야 할 대상도 아니며, 막연히 좋은 죽음을 바라지 말고, 적합한 죽음을 고민해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조언을 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 교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바람직한 죽음에 대한 대화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인 측면 등에 대한 공개적인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한 사회, 집단, 국가의 복지나 의료서비스도 그 구성원의 인생관, 죽음을 바라보는 문화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리한 생명 연장의 배경에는 죽음을 거부하는 생각, 부모에 대한 지나친 효도 의식, 백세시대의 허상과 과장, 먼저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작용한다. 이렇듯이 여러 가지 측면을 모두 감안해 의견을 모으면 좋은 죽음뿐만 아니라 자살이나 안락사 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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