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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역사는 순환하는가, 전진하는가?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윤희진 기자

윤희진 기자

  • 승인 2022-02-21 08:16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시사오디세이)
박양진 교수
오늘은 2022년 2월 22일이다. 2라는 숫자가 여섯 개가 있는 드문 날이어서 좋은 날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달력은 잘 아는 것처럼 기독교력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한 날(12월 25일)의 일주일 후를 1년 1월 1일로 정한 달력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있는 믿을만한 기록은 없고, 이런 달력을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예수 탄생 이후 500여 년이 지나서였다. 이때 기록을 제대로 잘 살피지 못해서, 실제 예수의 탄생 연도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당시의 왕 헤롯의 재위 시기를 고려하면 최소한 그보다 4년 이전인 것이 확실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정했던 달력 자체의 출발점에 착오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력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시점으로 해서 매년 한 해씩 늘어나는 달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달력으로는 회교력이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이 달력은 (기독교력의) 622년 7월 16일 메카에서 메디나로 선지자 무함마드가 이주한 것을 시작점으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회교력은 해가 아니라 달을 기준으로 하는 순수태음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1년 12개월이 354일 또는 355일이고 태양력과 비교하면 1년이 열흘가량 짧다. 그래서 잘 알려진 회교의 금식월인 라마단(9월)이 기독교력과 비교하면 매년 그만큼 앞당겨지는 것이다. 참고로 오늘은 회교력으로는 1443년 7월 20일이다.



한편 신대륙의 토착 문명인 마야 문명에서도 매우 정교한 달력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익숙한 연월일이 아니라 박툰(394.15년/20카툰), 카툰(19.7년/20툰), 툰(360일), 우이날(20일), 킨(1일)으로 구분하는 태양력을 채택하였는데 최소한 기원전 1세기경에 이러한 달력을 이미 사용하였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마야 달력의 최초 시점을 계산하면 기원전 3114년 8월 11일인데, 아마도 마야인이 우주의 첫날, 세상의 첫날을 이날로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야 달력에 따른다면 오늘은 13박툰, 0카툰, 9툰, 5우이날, 10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근대의 동아시아 사회에서 사용한 달력은 이렇게 매년 한 해씩 늘어나는 달력이 아니라 60갑자가 반복해서 순환하는 달력이었다. 열 개의 천간(갑을병정 등)과 열두 개의 지지(자축인묘 등)를 결합해 만든 60갑자가 각각 연월일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달력에 따르면 오늘은 임인년 임인월 병오일이다.

이렇게 천간과 지지를 결합하여 만든 달력을 사용했던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증거는 기원전 13세기 중국 상나라 후기의 수도인 안양에서 확인된다. 상 나라의 왕이 거북의 배껍질이나 소의 어깨뼈를 불에 그을려서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점을 쳤는데, 그 점친 내용을 뼈에 기록한 것이 갑골문자이다. 보통 갑골문의 맨 앞에는 점을 친 날짜를 적었는데 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사용하는 60갑자와 동일하다.

이렇게 60갑자에 기초하여 수천 년 동안 사용했던 달력은 계속 반복 순환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의 역사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근대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황금시대는 전설상의 요순시대였고, 공자의 가르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함없는 진리였으며, 모든 왕조는 건국과 유지, 소멸의 반복이었다. 시대의 변화와 발전, 역사의 전진과 진보의 개념은 이러한 순환적 달력 체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 순환의 가장 큰 주기인 60년이 지나고 새로운 해를 맞는 것이 바로 회갑 또는 환갑이다. 작년에 회갑을 맞은 필자는 올해 새로운 한 주기를 시작하고 있는데, 변화없는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진전과 혁신을 이루기를 개인적으로 희망하고 있다. 오는 3월 9일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정치와 경제, 외교, 안보, 통일, 인권 등 모든 분야에서 진일보하는데 앞장 설 후보자가 선출되기를 기대해본다.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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