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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내일] 한 해를 보내며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송익준 기자

송익준 기자

  • 승인 2023-12-17 08:42
  • 수정 2023-12-18 14:03

신문게재 2023-12-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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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천 교수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길목에 서 있다. 낮과 밤이 쉴 새 없이 뒤바뀌어 날이 가고 달빛이 기울다 차기를 거듭한 끝에 365일이 다 지나가고 있다. 올해도 여전히 3년여를 이어 온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지 않은 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면서 시작하였다. 늘 그렇듯이 봄은 짧았으며, 가던 길 멈추고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에서 잠시 웃고 담소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5월 11일에 정부가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하고 3년 4개월 만에 일상을 회복하고 마스크를 벗기는 했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다시 찾아온 여름은 엘리뇨 현상에 따른 유례없는 폭염으로 사람들이 쓰러져 못 일어났으며, 또 우리네 삶은 지루한 장마와 폭우 그리고 몰아친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니 그야말로 지난여름은 혹독한 자연의 응징을 절감한 끔찍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동물들도 지쳐 쓰러지고 나무와 풀들마저도 고개를 떨구었으니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아픈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였을까? 올해의 가을은 유독 짧았다. 더위의 끝자락에 초록마저 너무 지쳐 완연한 단풍이 물들지도 못하고 잎을 떨구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찾아온 차가운 겨울바람 앞에서 어김없이 한 해를 보내야 하는 마음은 스산할 수밖에 없으며, 다가올 새해에 희망을 품고 맞이하기가 쉽지 않아 곤혹스럽다.

고개를 돌려보니, 나라 밖 상황은 여전히 극한을 치닫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은 올해도 교착 상태에 빠져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여전히 전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복잡한 역사적, 민족적, 정치적, 종교적 갈등과 이해관계로 빚어진 극단의 대립에 세계 경제는 휘청거리고 지구촌의 불안감은 날로 고조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종합적이고 진정한 평화 해결책을 찾기는 난망할 따름이다.



나라 안 사정도 만만치 않다. 금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가계 부채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장기 불황의 직격탄은 언제나 서민들이 감당할 짐이 되고 있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고 청년 실업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보니 가장 빛나는 시간을 보내야 할 청춘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그런데 나라의 경제 위기가 심각하고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정치권에서는 서민들을 위한 민생 대안 찾기에 골몰하기보다는 그저 내년 총선을 위한 그들만의 주도권 경쟁에만 몰입하고 있다.

교육계는 교권 침해로 고통받으면서 보낸 힘겨운 한 해였다. 서이초 교사 사망, 의정부 호원초 교사 사망, 대전 용산초 교사 사망, 대전 대덕구 교사 피습 사건 등은 우리를 낙담케 하였으니 교권 침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는 참혹한 민낯이었다. 지난 9월 21일에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교권 회복 4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어 법적 토대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이 법안이 결국 선생님들의 희생과 죽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나라 공교육 회복과 정상화로 가는 길은 아득하다.

그런 중에, 이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대표 선수들의 빛나는 투지와 성과는 아름다웠으며 국민적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 선수의 부상 투혼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으며, 앞으로 올림픽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묵묵히 훈련에만 집중하겠다는 비장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서는 이 시대의 진정한 챔피언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어 흐뭇했다.

그러므로 일찍이 김종길 시인이 노래했듯이, 새해는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임을 기억하여 험난한 세상에서도 희망을 갖고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갈 필요가 있으며, 지난 10월 10일에 별세한 '사랑의 시인' 김남조 시인이 생전에 우리에게 권면했듯이,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 어디쯤'이며 세상은 황송한 축하 잔치임을 기억하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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