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9개월째 친모의 학대로 의식불명에 빠진 '환이'를 보내는 수목장 안장식에서 봉사자 앞에 얇은 미소의 영정그림이 놓여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이 곁을 지키고, 인공호흡기에 숨이 주입되는 소리를 확인하며 말이 필요 없는 대화를 나눴다. 대전서부 아동보호전문기관 선생님들이 매달 환이를 찾아가 인사 나누고, 생활에 필요한 기저귀와 물티슈를 가져다주었다. 그때마다 환이는 곤히 잠든 아이처럼 두 눈을 감은 채, 가슴을 가냘프게 펄럭이며 살아 있음을 보이려 애썼다. 환이는 병원에서 그동안 미처 못 받은 보살핌을 받으며 부쩍 성장했고, 조촐하지만 100일 잔치도 가졌다. 병원에 처음 도착했을 때 키 71㎝에 몸무게 7.5㎏에서 키도 크고 몸집도 성장한 3살 아이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의 손길이 너무 늦게 닿았던 것인지, 환이는 떠났다.
친모의 학대로 2년간의 연명치료 끝에 숨을 거둔 환이의 안장식에 봉사자들이 마련한 조화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부모가 방임하고 학대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남았을 때, 환이처럼 24개월간 치료에 필요한 모든 도움을 모든 학대 아동들 역시 받을 수 있을까? 너무 깊은 상처로 연명치료가 더는 아이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의료진이 판단할 때, 친권을 상실한 친부모를 대신해 후견인 자격의 지자체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과연 방임과 학대받는 아이를 조금 더 일찍 발견해 구조하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과제는 그대로 남았다.
이날 안장식에 참석한 대전서부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영정 대신 놓은 그림에 환이가 아픈 표정이 아닌 웃음 띤 모습이라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라며 "같은 슬픔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이 많아진다"라고 밝혔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