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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우 회장. |
식장산의 험난한 지형은 자연의 요새지로 삼국시대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때 대전 전투의 격전지로 현재도 국방상의 요지이다. 삼정동 경부선철도 변에 있는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가 있어 이를 대변한다. 백제의 충신 성충(成忠)은 옥중 상서에서 "앞으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니 만일 적병이 오거든 육로는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로는 기벌포(伎伐浦)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신라는 이 탄현을 넘고 백제는 패망하였다. 탄현으로 추정되는 장고개 주변 국사봉과 꾀꼬리봉 등 식장산 능선 줄기를 따라 여러 산성과 보루가 지금도 남아 있다. 이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의 길목으로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현재도 경부선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경부선철도를 부설할 때 작업이 어려운 구간이었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의 터널이 집중되어 있는 험난한 곳이다.
학창 시절 기억에 동구 대성동에 있는 식장산의 고산사는 소풍 장소로 유명했었다. 흙먼지 펄펄 날리던 비포장 대전-금산 간 국도를 따라 가오동 변전소를 지나면 대성동 삼거리가 나온다. 대성리 공동묘지를 지나 한산한 산길을 힘겹게 오르면 '고산사' 가는 길이 아니라 '고생사' 가는 길이라는 푸념이 절로 나왔다. 고산사는 대웅전, 목조석가모니불좌상, 아미타불화 등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가 있는 고찰이다. 인근에 전하는 '은어송 전설'은 고산사 스님 범흥과 나무꾼 은어송과의 이야기가 담긴 전설이다. 고산사 근처에는 이사동 오두산 격전지의 주인공 이규홍 의병장의 마지막 항일 항전지인 장군바위도 있다.
세천유원지 인근 산을 지역민들은 수도산이라 불렀다. 이곳의 수원지는 1934년 만들어진 대전 최초의 상수원으로 대청호의 물을 수돗물로 쓰기 전까지 대전 시민의 식수원이었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1996년 생태 보전림으로 지정되었다. 해방 후 땔감이 부족해 유일하게 숲이 보존된 수도산은 나무꾼들이 넘쳐 났다. 식장산은 새해 첫날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식장산하 가활만인지지(食臧山下 可活萬人之地)」라는 옛말도 전한다. 식장산 아래에 만인이 편안하게 살 곳이라는 것이다. 식장산은 대전의 상징이자 대전을 수호해 준 시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산이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경외시했다.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에 든다고 했고, 산은 날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성황당이 있는 재(고개)를 넘는다고 했다. 지금은 폐허처럼 남아 있는 인근 증약터널의 입구에는 '악신경분'(嶽神驚奔)이라는 문구가 쓰인 액석이 있다. 그때 놀라서 떠났던 식장산의 산신령이 다시 돌아와 우리의 염원을 이루게 해줄 정령이 깃든 산으로 식장산을 우리는 아끼고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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