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는 땅으로 된 자신만의 공간이 없다. 근본에 대한 그리움을 베란다에서 종종 푼다. 창안으로 텃밭, 정원 등이 눈에 띈다. 밖에서 보이는 것, SNS에 올라온 이미지가 전부여서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 선반, 벽걸이 선반, 이동식 화분대 등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 집 베란다엔 화분 30여개가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남은 허름한 것이다. 듬뿍 정성들이진 못하지만,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각기 다른 생명의 신비, 시시각각 피어나는 꽃, 자연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 있다. 소통이랄까,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떠올려 보면 지금과 같은 세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고서화에는 우아한 산수, 고목죽석류가 많이 등장한다. 아름답고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의 스승, 어머니 품과 같은 것이다. 동양에서는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함'으로 보았다.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산, 강, 바다, 동물, 식물, 비, 바람, 구름 따위이다. 스스로 생성소멸하며 변화한다. 도가에서는 자연의 의도대로 되기 위해 완전한 무작위 상태에 도달하려 애썼다.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사는 것이다. 노자는 무위자연을 주장하지 않았는가, 자연과 동화되어 살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를 누워서 즐기기(臥遊) 위해 방안에 걸어두었다.
자연이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자, 그 품이 그리워 울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생활공간에 가산을 만들어 산수의 고매함 즐기려한다. 뜨락에 자연을 만든다. 수목, 화초와 더불어 자연석을 가져다 놓는다. 중국 쑤저우(蘇州市) 타이후(太湖) 주변에서 나는 돌, 태호석이 사랑 받았다. 태호석은 구멍이 숭숭 나고 복잡, 기괴한 모양이다. 경관석을 이르는 보통명사처럼 되었다. 쑤저우는 원림으로 유명하다. 왕가, 민간 가리지 않고 즐겼다. 우리도 다르지 않아, 궁궐에 태호석이 보인다. 특히 창덕궁엔 태호석이 많이 있다.
울안에 들여 놓고 즐기는 것으로 부족했을까? 실내에 들여 놓고 생활 깊숙이 즐기려 하였다. 바로 수석이다. 이 전에 게재했던 바가 있다. 자연석에 자연의 오묘한 아름다움이 흥미진진하게 담겨있다. 수석 그 자체가 땅의 기록이자, 화석, 석각, 고분벽화, 거석문화 등 자연사의 징표이다. 땅의 기록인 것이다. 한때는 유행하여 너나없이 괴석을 찾아 나섰던 기억이 난다.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석질이 좋아야 하고 개성이 있어야 하며 멋있어야 한다. 산수가 축소된 산수경석, 어떤 형체를 닮은 물형석, 표면에 문양이 있는 무늬석, 다양한 색상이 함께 있는 색채석, 심상을 자극하는 추상석, 전해오는 역사가 담긴 전래석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시각은 달라도 진지하게 만나고 즐긴다.
자연을 가꾸고 즐기는 사람 중에 악인이 어디 있으랴. 산수(山水)는 자연의 다른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논어 집주에 의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밝아 물 흐르듯 막힘이 없다. 지혜를 얻으려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그러한 것들을 즐기며 산다. 어진 사람은 의리를 중히 여겨 그 중후함이 산과 같다. 정적이며 집착하는 것이 없어 오래 산다.
우리는 인격체가 되기 위해 산다. 인격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산수는 우리의 본향이자 진리와 정의다. 진리와 정의가 죽으면 반드시 패망한다. 그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산수를 즐기자.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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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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