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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민 미술평론가 |
쥐가 출몰하는 상황은 농경사회인 조선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저장된 곡식을 잠식시키는 피해는 한 해 농사의 성패와 직결되었기에, 쥐는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적 위험이었다. 그러나 쥐는 해충이면서도 다산·번성·근면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해와 길상을 오가는 이중적 의미는 생활과 민속 전반에 스며 있었다. 정월 첫 자일(子日), 상자일(上子日)에 논과 밭두렁에 쥐불을 놓던 풍습 역시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쥐는 피해의 원인일 뿐 아니라 환경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징후였다. 곡식창고 주변 쥐의 이동은 벼의 건조 상태나 저장의 적절성을 드러내는 생태적 지표로 읽혔고, 마을은 이 변화를 근거로 한 해의 대비를 논의했다. 첫 자일의 쥐불 역시 단순 방제가 아니라 농경 순환을 여는 공동 선언이었다. 그렇게 쥐는 현실적 위협과 상징적 의미가 교차하는 존재로 자리했다.
쥐에 대한 인식은 조선의 그림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신사임당의 <수박과 쥐>에서는 두 마리 들쥐가 잘 익은 수박 앞에서 씨앗을 집어 먹고 있다. 작은 몸의 긴장감과 주변을 살피는 모습은 실제 관찰에서 비롯되지만, 장면 전체는 위협보다는 생명의 확장을 암시한다. 수박의 열린 단면과 씨앗의 이동은 풍요와 순환의 상징이었고, 신사임당은 이 상징을 쥐의 생태와 겹쳐 배치하며 당시 자연을 바라보던 감각을 화면에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이지신도>의 '자(子)'는 조선 후기 민화의 기호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인물화의 형식이지만 얼굴만 동물로 대체된 이 형태는 실제 생태나 비례보다 정면성과 대칭을 강조한다. 붉은 도포와 녹색 띠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고, 정면을 응시하는 자세는 악귀를 막는 벽사 기능을 수행했다. 이러한 형식을 이해하면 쥐가 십이지신의 첫 자리에 놓인 이유도 자연스럽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고 변화의 기운을 먼저 드러내는 존재였기에, 쥐는 시간의 문을 여는 상징으로 자리했다. 민화 속 쥐는 생태적 실체를 넘어 시대가 필요로 한 질서의 출발점을 형상화한 기호였다.
쥐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만들어냈다. 농경 사회에서는 수확량을 가늠하는 지표였고, 민화에서는 질서와 시간의 순환을 맡는 상징이었으며, 오늘 의 도시에서는 기후와 위생, 인프라 상태를 드러내는 관찰 대상이 되고있다. 시대가 달라져도 쥐는 우리 환경의 변화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존재다. 쥐를 바라보는 일은 결국 우리가 만든 공간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된다.
조선의 그림 속 쥐든, 서울의 밤을 오가는 쥐든, 그 존재는 시대의 조건을 비추는 하나의 상징이다. 따라서 쥐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상태를 마주하는 일과 같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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