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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 칼럼] 조선의 그림 속 쥐, 서울의 밤을 누비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 승인 2025-12-10 16:58

신문게재 2025-12-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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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미술평론가
최근 서울 도심에서 쥐를 보았다는 제보가 다시 늘고 있다. 이제는 밤 골목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광장, 시장, 아파트 단지처럼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오가는 공간에서도 쥐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포착된다. 서울시 민원 통계에서도 변화는 확인된다. 2020년 1,200건대이던 쥐 관련 민원은 2024년 들어 2,000건을 넘어섰다. 쥐 출몰 증가의 원인은 단일하지 않다. 기록적 폭염과 긴 장마는 하수도의 습도를 바꾸어 지하 서식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재개발로 은신처가 사라진 지역에서는 쥐가 인근 생활권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이 있다. 외식 증가와 음식물 쓰레기 확대는 야간 먹이원을 풍부하게 만든 요인으로 지목된다. 여러 조건이 중첩된 결과, 도심에서 마주치는 쥐는 도시 구조 어디에서든 균열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가 되기 시작했다.

쥐가 출몰하는 상황은 농경사회인 조선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저장된 곡식을 잠식시키는 피해는 한 해 농사의 성패와 직결되었기에, 쥐는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적 위험이었다. 그러나 쥐는 해충이면서도 다산·번성·근면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해와 길상을 오가는 이중적 의미는 생활과 민속 전반에 스며 있었다. 정월 첫 자일(子日), 상자일(上子日)에 논과 밭두렁에 쥐불을 놓던 풍습 역시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쥐는 피해의 원인일 뿐 아니라 환경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징후였다. 곡식창고 주변 쥐의 이동은 벼의 건조 상태나 저장의 적절성을 드러내는 생태적 지표로 읽혔고, 마을은 이 변화를 근거로 한 해의 대비를 논의했다. 첫 자일의 쥐불 역시 단순 방제가 아니라 농경 순환을 여는 공동 선언이었다. 그렇게 쥐는 현실적 위협과 상징적 의미가 교차하는 존재로 자리했다.

쥐에 대한 인식은 조선의 그림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신사임당의 <수박과 쥐>에서는 두 마리 들쥐가 잘 익은 수박 앞에서 씨앗을 집어 먹고 있다. 작은 몸의 긴장감과 주변을 살피는 모습은 실제 관찰에서 비롯되지만, 장면 전체는 위협보다는 생명의 확장을 암시한다. 수박의 열린 단면과 씨앗의 이동은 풍요와 순환의 상징이었고, 신사임당은 이 상징을 쥐의 생태와 겹쳐 배치하며 당시 자연을 바라보던 감각을 화면에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이지신도>의 '자(子)'는 조선 후기 민화의 기호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인물화의 형식이지만 얼굴만 동물로 대체된 이 형태는 실제 생태나 비례보다 정면성과 대칭을 강조한다. 붉은 도포와 녹색 띠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고, 정면을 응시하는 자세는 악귀를 막는 벽사 기능을 수행했다. 이러한 형식을 이해하면 쥐가 십이지신의 첫 자리에 놓인 이유도 자연스럽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고 변화의 기운을 먼저 드러내는 존재였기에, 쥐는 시간의 문을 여는 상징으로 자리했다. 민화 속 쥐는 생태적 실체를 넘어 시대가 필요로 한 질서의 출발점을 형상화한 기호였다.



쥐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만들어냈다. 농경 사회에서는 수확량을 가늠하는 지표였고, 민화에서는 질서와 시간의 순환을 맡는 상징이었으며, 오늘 의 도시에서는 기후와 위생, 인프라 상태를 드러내는 관찰 대상이 되고있다. 시대가 달라져도 쥐는 우리 환경의 변화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존재다. 쥐를 바라보는 일은 결국 우리가 만든 공간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된다.

조선의 그림 속 쥐든, 서울의 밤을 오가는 쥐든, 그 존재는 시대의 조건을 비추는 하나의 상징이다. 따라서 쥐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상태를 마주하는 일과 같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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