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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조선시대, 해를 맞이하는 선조들의 마음 다짐

최정민 미술평론가

최화진 기자

최화진 기자

  • 승인 2026-01-28 16:48

신문게재 2026-01-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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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미술평론가
해는 매일 뜬다. 그런데 유독 새해 첫날만, 사람들은 해가 떠오를 동쪽 하늘을 보기 위해 몰려간다. 휴대폰을 들고 같은 순간을 공유하며 우리는 이 장면을 '해맞이'라 부른다. 이 풍경은 너무 익숙해서, 우리는 해가 뜨는 일과 새해가 시작되는 일을 같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해를 맞이하는 방식은 저절로 생긴 관습이 아니다. 새해를 의례로 만들고 이를 그림으로 남긴 과정 속에서 해맞이라는 풍속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돼 왔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해맞이는 해를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새해를 맞는 의례였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정월 초하루에는 덕담을 나누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풍속이 있었다. 이를 통해 정초가 공동체적 의례의 중심에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맞이는 감상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 조상과 후손, 국가와 백성을 하나의 질서로 묶는 연례 의례였다.



17세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한 유성업(柳成業)의 <해맞이>는 이러한 해맞이를 풍경이 아닌 의례의 장면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해가 뜬다'는 자연현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해를 맞이한다'는 문화적 행위의 구조를 장면 속에 담아낸다.

<해맞이>의 화면은 아래에서 위로 시선이 상승하도록 설계돼 있다. 좌측 하단 담장 앞에 선 두 인물은 붉은 해가 떠오르는 오른쪽 상단을 향해 서 있다. 얼굴은 드러나지 않지만 몸의 방향과 풍경 배치만으로도 그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분명하다. 인물은 중심이 아니라 시선의 흐름을 안내하는 위치에 놓여 있으며, 관람자는 회화 속 인물의 시선을 따라 해를 바라보게 된다. 이 그림은 관람자의 시선을 구조적으로 통제하며, 새해 해를 마주하는 태도를 학습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유성업이 속했던 도화서는 사적인 취미화를 그리는 조직이 아니라, 왕실과 관청의 요청에 따라 국가적 장면과 의례를 그리던 기관이었다. 도화서 화원이 제작한 그림은 개인 감상을 위한 예술품이라기보다, 왕실과 관료 사회가 공유해야 할 태도와 질서를 제시하는 공적 이미지였다. 이러한 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유성업의 <해맞이>는 새해를 맞는 이상적인 태도를 공유하기 위해 제작된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제작된 17세기는 병자호란 이후 사회 전반이 깊은 상흔을 겪던 시기였다. 조선은 혼란 이후 유교적 가치와 정치 질서를 재정비하려 했고, 해맞이 장면은 그 질서를 다시 세우는 상징적 도상이 되었다. 해를 향해 선 사람들의 모습은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려는 시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왕실의 의례처럼 새해를 맞이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를 향해 서는 장면은 여전히 반복된다. 연초가 되면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서 흔들린 질서를 다시 세우고 싶어 한다. 빠르게 바뀌는 사회 환경 속에서 새해는 늘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낸다. 조선의 해맞이가 국가 질서를 회복하려는 시대의 태도였다면, 오늘날의 해맞이는 삶의 방향을 다시 가늠하려는 마음 다짐에 가깝다.

해맞이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앞에 서는 순간마다 우리가 다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람들이 해를 바라보며 나라와 공동체의 질서를 떠올렸듯, 오늘의 우리는 그 장면 앞에서 삶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돌아본다. 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마음속으로 정한다. 해맞이라는 오래된 풍속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시대를 달리해도 늘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기 때문이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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