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8일.
대전에서 일어난 충청권 최초의 민주화 운동.
삼팔민주의거를 아시나요?
1960년 3월, 대한민국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권력에 눈먼 독재 정권은 학생들을 정치 도구로 내몰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짓밟고 있었죠.
대전의 학생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 방송을 매일 듣거나, 특정 신문을 강제 구독 받는 등 권력의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삼월 팔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선거유세에 학생들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학교측이 이를 막아섭니다.
교문은 굳게 닫혔고 학교장은 학생 간부들을 관사로 불러 회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열망까지 가둘 순 없었습니다.
담장을 넘어서라도 가야 한다!
대전고 학생 1천 명이 담장을 넘어 대흥동 일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하나였습니다.
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
현장은 참혹했습니다. 경찰은 기마대를 투입해 개머리판을 휘둘렀고, 소방호스에선 차가운 물줄기가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교복이 뚫리는 염산까지 뿌렸죠. 공포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서로를 지켰습니다. 대전의 거리는 그렇게 함성으로 물들어갔습니다.
이틀 뒤인 3월 10일, 불꽃은 대전상고로 옮겨붙었습니다. 학생 간부들이 미리 잡혀갔다는 소식에, 수백 명의 학생들이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구속된 친구를 석방하라!" 시민들의 응원 속에, 대전역과 도청을 뒤흔든 그들의 함성은 시내 곳곳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학생들의 행렬은 시청 앞에서 경찰의 제지에 부딪혔고 정체 불명의 단체까지 학생들을 진압하면서 부상자들이 속출했습니다. 학생 50여명이 연행되면서 이날의 시위는 마무리 됩니다.
학생들의 행동에 소위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신문에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학생들의 시위는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므로 앞으로 발생하는 학생 시위는 엄단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충청권 최초의 민주화 운동, 삼팔민주의거는 강제 진압으로 마무리 됐지만, 훗날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오늘. 대전의 심장이 뛰던 그날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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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민주의거를 보도한 중도일보 기사 1960년 3월11자 |
jodpd@금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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