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성 대한광복회 서산·태안연합지회장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오며 주목받고 있음
-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역사적 뿌리를 바탕으로 조국과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하고 있음
- 이 지회장은 독립선언서를 읽는 순간 선열들의 희생을 떠올리며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회고함
- 독립운동 정신은 특정인의 몫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어가야 할 가치라고 강조함
- 진정한 독립운동 정신은 물질적 풍요나 명예보다 절제와 배려, 그리고 나눔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함
- 이봉하 선생은 1930년대 초 서산 지역에서 항일 활동을 펼치다 경찰의 추적을 피해 부석면 간월도 일대에서 약 6~7년간 은신 생활을 이어갔음
- 1938년경 부석면에 정착해 이득구, 이태구 등 동지들과 함께 청년 조직을 결성해 지역 청년들을 교육하고 계몽 활동을 펼침
- 이완성 지회장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도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음
- 청소년들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전하는 일에 큰 의미를 두고 있음
- 장학사업과 추모 활동을 하고 있는 이완성 지회장은 강연 경험이 많지 않아 긴장했지만 학생들이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과 따뜻한 눈빛, 겸손한 태도를 보며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확신을 느낌
- 부친 이봉하 선생의 숭고한 뜻에 따라 자손 및 가족들은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음
- 장학사업은 독립운동 정신을 교육과 나눔으로 계승하는 뜻깊고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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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출신 애국지사 이봉하 선생의 차남인 이완성 대한광복회 서산·태안연합지회장이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며 주목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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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출신 애국지사 이봉하 선생의 차남인 이완성 대한광복회 서산·태안연합지회장이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며 주목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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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출신 애국지사 이봉하 선생의 차남인 이완성 대한광복회 서산·태안연합지회장이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며 주목받고 있다. |
이완성 지회장은 독도 수호 활동과 한인사회 권익 보호, 장학사업 등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선열들의 뜻을 이어가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역사적 뿌리를 바탕으로 조국과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 지회장은 서산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인 이봉하 선생의 둘째 아들로, 1974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도 한인사회와 조국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는 미국 뉴저지 한인회장을 역임했으며, 1992년 LA 폭동 당시 수습위원장을 맡아 혼란에 빠진 한인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힘썼다. 또한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에도 수습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동포사회의 연대와 지원을 이끌어냈다.
특히 그는 독도 수호 미주본부장으로 활동하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해외에서 독도 수호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이러한 활동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정체성과 조국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지회장은 2025년 3월 1일 서산시청에서 열린 삼일운동 기념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선열들의 희생을 되새겼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독립선언서를 읽는 순간 선열들께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셨다는 사실과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독립운동 정신이 특정인의 몫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어가야 할 가치라고 강조한다. 이 지회장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아버지로부터 배운 삶의 가르침으로 절제와 배려, 나눔의 가치를 꼽았다. 그는 "진정한 독립운동 정신은 물질적 풍요나 명예보다 절제와 배려, 그리고 나눔에서 비롯된다"며 "자신이 누릴 것을 모두 누리고 나서는 남을 절대 도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완성 지회장은 지금도 아버지에게서 전해 들었던 독립운동 이야기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1919년 4월 8일 밤, 아버지 이봉하 선생은 허후득 선생 등과 함께 마을 주민 50여 명을 규합해 보현산에 올라 횃불을 들고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도 항거를 멈추지 않았다던 아버지의 말씀은 그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봉하 선생은 1930년대 초 서산 지역에서 항일 활동을 펼치다 경찰의 추적을 피해 부석면 간월도 일대에서 약 6~7년간 은신 생활을 이어갔으며, 1938년경 부석면에 정착해 이득구, 이태구 등 동지들과 함께 청년 조직을 결성해 지역 청년들을 교육하고 계몽 활동을 펼쳤다.
당시에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정신으로 청년들을 이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독립운동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 등지에서 초청이 이어졌지만 이봉하 선생은 이를 모두 사양했다. 그는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였다"는 뜻을 주변에 밝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완성 지회장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도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다. 1967년 자신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시절, 서산을 거의 벗어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서울로 올라와 함께 창경궁과 영등포 일대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던 일이 유일 했었다고 전했다.
당시에는 특별한 이유를 알지 못해 의아하게 여겼지만, 그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그 기억은 더욱 가슴 깊이 남게 됐다.
이완성 지회장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전하는 일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갖는 것"이라며 "그 자부심의 뿌리가 바로 독립운동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몇 해 전 서산 부석고등학교에서 강연을 진행했던 그는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강연 경험이 많지 않아 긴장했지만 학생들이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과 따뜻한 눈빛, 겸손한 태도를 보며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확신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장학사업과 추모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는 그는 처음부터 큰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선친의 뜻을 기리고 교육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에 함께했던 선열들의 흔적을 찾고 그 정신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고 설명했다.
배움의 부족으로 나라를 빼앗겼다는 안타까움을 늘 강조해 온 부친 이봉하 선생의 숭고한 뜻에 따라 자손 및 가족들은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2023년부터 서산·태안 지역 고등학생 14명에게 1인당 100만 원, 중학생 4명에게 50만 원씩 총 1600만 원의 장학금을 매년 지급하며 지역 인재 양성을 적극 지원해 오고 있다.
아버지의 연금과 가족들이 모은 성금으로 이어지는 장학사업은 독립운동 정신을 교육과 나눔으로 계승하는 뜻깊고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완성 지회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그는 우리 사회가 공동체와 미래 세대를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지회장은 "이제는 나와 가족을 넘어 공동체와 미래 세대를 함께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하다"며 "독립운동 정신은 오늘날 교육 속에서 다시 살아나야 할 소중한 가치"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일에 함께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애국지사 소운 이봉하 선생의 뜻을 이어가는 그와 가족들의 삶은 독립운동 정신이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가치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길잡이임을 보여주고 있다.
서산=임붕순 기자 ibs9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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