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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오의 시조 풍경-13] 대동 산1번지<2>-십구공탄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6-04-17 00:00
새까만 얼굴에 푹 꺼진 열아홉 눈[眼〕

허기에 불붙이면 이글이글 타는 충만

오늘도 소신공양하며

시래기죽 끓인다.



문풍지 겹겹 발라 한겨울 넘겨야지

네 식구 둘러앉아 맨손 핥고 연명해도

연탄불 꺼트리지 말아야

봄이 온다 봄이 온다.



십구공탄 소리친다. 맹물 말고 먹물 돼라.

아프고 고픈 만큼 독한 마음 장전(裝塡)한

열아홉 발사대에서

응원가가 타오른다.



<시작노트>

나는 열세 살 소년으로 대동 산1번지 판잣집에서 자취를 하며 살았다. 내가 너무 어른스럽게 보여서 감성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믿음직하게 여김 받아 불행은 자초했다. 당시 모두가 연탄을 때며 살았다. 연탄의 구멍이 19개라 하여 십구공탄이라 불렀다. 연탄이 꺼지지 않고 잘 타고 있으면 세상은 너무나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연탄을 가득 쌓아놓고 살면 부자라 여겨졌다. 연탄의 열 두 구멍이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난한 처지에는 번번이 하루치의 연탄을 날마다 사가지고 왔다. 연탄불은 건듯하면 꺼지기 마련이다. 십구공탄이 타오르는 붉은 불길은 삶의 힘이요 응원가요 에너지였다. 연탄불에 시래기죽을 끓이면서 곡식을 조금만 넣어도 행복해서 눈물이 맺혔다. 달동네 언덕을 밤에 보면 마치 고층건물같이 층층이 불이 켜졌다. 낭만적으로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그림을 잘 그리면 명작이 된다. 명작의 화폭 속에서 고독한 소년은 철학자가 되어갔다. 열다섯 살에 쇼펜하우어와 후지무라 마사오의 자살론을 읽으면서 다행히 용기가 없어 질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박헌오
박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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