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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한용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 |
지금 대한민국은 단순한 안보위기가 아니라 문명사적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우리는 북한 핵문제를 외교 현안이나 군사적 변수로 보던 시대를 지나 '북핵시대'라는 새로운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 북핵시대란 북한의 핵보유를 넘어 국가전략과 전쟁양상, 동맹과 억제 방식, 국가리더십이 함께 달라지는 시대를 의미한다.
그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김정은의 '영토평정' 개념이다. 김일성이 '국토완정'으로 무력통일을 추구했다면, 김정은의 '영토평정'은 핵무기를 기반으로 정치적 의지를 강요하고 전쟁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새로운 통일전략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무력충돌 시 핵사용의 정치적·심리적 장벽을 크게 낮추고, 북한 핵이 협상수단을 넘어 실제 전쟁수행 개념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북한은 핵사용을 전제로 전략을 바꾸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비핵화 시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북핵시대는 단순히 무기가 하나 더 추가된 시대가 아니다. 핵보유국과 비핵국 사이에서는 위기관리와 전쟁억제의 논리 자체가 달라진다. 이제 대한민국 역시 변화된 전략환경에 맞는 새로운 국가전략과 리더십을 준비해야 한다.
국제질서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충돌,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는 국제정치가 다시 힘의 정치가 지배하는 현실주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일부 전략학자들은 오늘날을 '포스트 확장억제(Post-Extended Deterrence) 시대'라고 부른다. 이는 한미동맹의 약화가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 보호에서 동맹국도 스스로 억제능력을 갖추고 책임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동맹이 진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북한의 ICBM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현실에서 미국이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핵위험에 노출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학술적 가설이 아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고민해야 할 것은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욱 강하고 지속가능한 동맹을 만들어 갈 것인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샤를 드골의 국가리더십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드골은 "프랑스의 방위는 프랑스인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국가의 생존만큼은 다른 나라의 선의에 맡길 수 없다는 전략철학 아래 독자적 핵억제력을 구축했고, 그 결과 프랑스는 더욱 존중받는 동맹국이 되었다.
드골의 선택은 프랑스만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다. 국가의 생존을 외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질 능력을 갖추려는 전략적 자강의 원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북핵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전략과 국가리더십을 재정립해야 한다.
대한민국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핵추진잠수함 개발은 원자력기술과 조선산업, 국방과학, 군사전략, 외교역량, 국민적 합의가 결합된 국가전략 프로젝트이며, 북핵시대를 살아갈 전략국가의 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지난 30여 년 우리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비핵화 실패 이후의 현실을 준비해야 한다. 역사는 준비한 국가에게는 기회를 주지만, 준비하지 않은 국가에게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
북핵시대에 필요한 것은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인식이며,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생존을 책임질 전략적 리더십이다. 국가의 생존을 누구 손에 맡길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사람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그 답은 오늘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전략을 선택하고 어떤 리더십을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한용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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