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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헌 변호사 |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통해 민주공화제를 선포한 이래, 수차례의 개정에 이어 1941년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제정하여 독립국가의 구체적인 설계도를 발표했다. 조소앙 선생이 정립한 '삼균주의(三均主義)'를 골자로 한 이 강령은 정치, 경제, 교육의 세 영역에서 모든 국민이 균등한 권리를 누리는 나라를 지향했다.
18세 이상 보통선거권, 대기업과 토지의 공공성 확보, 국비 무상 의무교육 등은 당대 서구의 헌법과 비교해도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인 설계였다. 이 삼균주의 사상은 훗날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도 초등학교 무상교육, 근로자의 이익균점권, 보통선거권 등으로 반영되었고, 오늘날 현행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에 이르기까지 도도히 이어지고 있다.
건국강령에 담긴 삼균주의는 동아시아의 오랜 유교적 이상향인 '대동사회(大同社會)'와도 깊은 맥이 닿아 있다. 공자는 천하가 만민의 것이며, 모두가 각자의 몫을 다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사회를 '대동사회'라 불렀다. 이러한 대동사회를 지향하는 유교적 문화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강력한 국가 주도의 경제·사회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이 이에 기꺼이 동참하는 데 심리적 자양분이 되었다. 사익보다 공익, 즉 의(義)를 앞세우는 문화와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국민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압축 성장과 복지 향상,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내며 오늘날의 풍요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늘 균형을 요구한다. 삼균주의나 대동사회가 지향한 균등과 조화가 지나친 '평등우선주의'로 변질될 때 사회는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다. 결과의 균등만을 맹신하는 과도한 평등주의는 개인의 창의성과 성취동기를 저해하고 사회적 정체를 초래하기 쉽다. 타인의 몫을 나누는 데만 급급한 평등은 결국 전체의 빈곤을 낳거나, 이를 통제하려는 권력의 독재로 귀결되곤 했다. 우리 역사 속 사사오입 개헌이나 유신헌법 등은 공공성을 명분 삼아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던 권력의 어두운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현행 헌법이 우리에게 안겨준 과제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조화다. 자유 없는 평등은 억압을 낳고, 책임 없는 자유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공동체 붕괴를 낳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자유는 선열들이 기초한 건국강령과 시민들이 피로 일궈낸 헌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제헌절을 맞아, 점차 심화하는 자산 양극화와 기회의 불평등 속에서 우리는 과연 삼균의 가치를 잊지 않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공자는 대동사회를 "노인은 편안하게 여생을 마치고, 젊은이는 쓰임이 있으며, 어린이는 잘 자라나는 사회"로도 말씀하셨다. 초저출생과 초고령화, 그리고 사회적 단절을 심화시키는 초양극화의 위기에 직면한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각 세대와 계층이 함께 어우러져 성장하고 있는가. 내가 요구하는 평등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누리는 자유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동반하고 있는가 뼈저리게 자문할 때다.
이제 대동의 가치는 구호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기회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교육·노동 개혁 등 제도 정비는 물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할 줄 아는 공동체 시민을 길러내는 인성교육을 통해 우리 삶 속에 구체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헌법은 고정된 박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 속에서 숨 쉬며 진화하는 유기체다. 건국강령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마음껏 펼치되,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제도와 실천으로 뒷받침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80여 년 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꿈꾸었고, 오늘날 우리가 비로소 완성해야 할 진정한 '대동 대한민국'이다.
정연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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