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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극복을 위해 도청 이전 논의를 유보하였다. 행자부 장관이 IMF극복상황실에서 현황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김용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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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교(전 충남도 정책기획관. 전 아산시 부시장) |
현재 충청남도와 대전광역시는 통합을 위한 협의가 공개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1989년 1월 1일 충남도 관하에 있던 대전시가 직할시로 분리 승격되면서 대전시 관내에 있던 충남도청을 충남도 관할구역으로 이전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도정의 최대 현안 과제로 도청 이전을 위한 우여곡절과 진행 과정의 몇 가지 대목을 도청 이전 본부장을 맡아온 입장에서 당시를 회고해 본다.
1989년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으로 충남 도세(道勢)는 충남이 전국 표준도라는 자부심에서 중하위도로 전락되고 도정(道政)은 대전(大田)이라는 구심점을 상실하여 도민들의 허탈감이 이만저만 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을 전후하여 도세의 변화를 지표상으로 볼 때 인구는 33%(300만명→200만명), 지역총생산액(GRP)은 39%, 기업체수가 33%가 감소한 반면, 농림수산업의 비중은 종전 28%에서 40%로 증가되었으며 주민의 삶의 질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 도서관과 의료기관의 수는 각각 55%, 51% 감소 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충남도는 1989년을 충남발전의 새로운 원년으로 삼고 '약화된 도세 조기회복'을 위해 행정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도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였다.
도청 이전 문제는 단순한 청사를 옮기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도청은 물론 교육청, 경찰청 등 수십 개의 도단위 유관기관이 옮겨가야 하고, 이러다 보니 기존도시로 옮기는 것이 유리할지? 새로운 신도시를 조성하여 이전하는 것이 유리한지? 수조 원이 투자되고 당장 수만 명의 인구 유입이 이루어지다 보니 도시발전의 폭발력과 영향력이 매우 큰 사안이었다.
따라서 지역별로 도청 유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도민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가는 곳마다 도청 이전은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지? 어디로 갈 예정인지?가 늘 화제가 되었다. 도의회가 열리게 되면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도의원들의 도정 질의도 도청 이전 문제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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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청이 이전하게 되면 수많은 유관기관이 함께 이전해야 한다. 사진=김용교 제공 |
도청 이전에 대한 분분한 의견 속에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천안~아산~당진~서산 등 충남 서북부권을 산업벨트로 만들어 산업단지 조성, 기업유치 등에 심혈을 기울여 나갔다.
그러던 중, 심 지사는 1990년 12월 관선 충남지사직을 마치고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과 노태우 대통령 당시 청와대 행정수석으로 국정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 후, 김영삼 대통령 취임으로 잠시 휴직기를 가졌다가 1995년 7월 1일 민선1기 충남지사로 취임하였다.
민선자치 시대를 맞은 충남도의 큰 이슈도 도청 이전문제였다. 특히 도의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도청 이전문제를 언제까지 미룰 것이냐" 면서 "지사의 복안과 로드맵을 밝히라"는 요구가 끊이질 않았다. 도민 여론이 분열되는 조짐까지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차에 1997년 말 IMF로 나라 전체가 비상 시국으로 심 지사는 "도청 이전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은 도세 회복이고, 도민 생활 안정이며, IMF 극복을 위한 지방정부 차원의 대응 노력이 긴요하다"며, 특별기자 회견을 열어 "IMF를 극복할 때까지 도청 이전문제 논의를 잠정 유보한다"고 선언하였다.
도지사의 도청 이전문제 논의 잠정유보 선언을 계기로 도청 이전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민선 1기에 이어 민선 2기에도 당선된 심 지사는 서해대교 등 서해안 개발,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 성공적 개최, 백제문화권 종합개발 착공 등 굵직굵직한 사업과 전국체전 우승 등 충남도정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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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기관 대표와 전문가그룹으로 도청이전추진위원회를 구성 운영하였다. 사진=김용교 제공 |
심 지사는 2002년 7월1일 민선 2기에 이어 민선 3기에도 충남지사에 당선되어 취임하였다.
1989년 1월1일 대전직할시 분리 이후, 도청 이전 문제는 자연스럽게 다시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민선1, 2기 도지사 재직중에는 도정여건과 주변 상황을 종합 판단하여 도청 이전 논의 유보 결정을 내렸지만, 민선 3기 4년 중에는 도정의 최대 숙제였던 도청 이전 후보지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미룰 명분도 없었고, 도민 여론도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 난제를 후임 지사에게 넘겨주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의지도 갖고 있었다.
도청 이전 신도시를 조성하고 도청을 비롯한 유관기관을 이전하여 정주 여건을 마련하는데까지의 도청 이전 업무를 100으로 본다면 도청 이전 후보지 결정문제는 50%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도민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제였다.
따라서 도청 이전 후보지를 결정하지 않고서는 도청 이전 업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심 지사는 연기군, 신행정수도 후보지를 한 축으로 거대 신도시를 조성하고, 맞은편 충남의 어느 지역에서 또 다른 한 축의 도청 신도시를 건설하게 된다면 균형발전의 파급효과가 충청권 전체로 미칠 것으로 내다보았다.
따라서, 유사 이래 충남발전의 최대 호기로 보고 어느 지역으로 도청 신도시를 조성할 것인지?에 대해 머릿속에서 늘 기획하며 고민해 오고 있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제정되자 심 지사의 IMF 등으로 도청 이전 논의를 유보한 것은 완벽할 정도로 신의 한수가 되었다.
도민들에게 위기 관리 능력의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도청 이전 후보지 결정의 공간적 범위와 선택의 폭을 더 넓게 잡을 수 있게 하는 등 하늘이 도운 절묘한 타이밍의 결단이었다.
즉, 대칭축 형성의 가능성을 안겨주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논의 유보 없이 일찌감치 덜컥 결정해 놓았더라면, 신행정수도(現 세종시)와 충남도의 균형발전을 꾀하는 온전한 양대축 형성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충남 도민들께 행운을 안겨주었고 나는 도청 이전 업무를 추진하면서 심대평 지사의 상황판단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에 큰 감명을 받았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판결에 따라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로 변경되었고, 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추진지원단장 겸(행정도시지원단장) 초대 충남도청이전 본부장으로 겸직 발령을 받게 되었다.
심 지사는 도청 이전예정지 결정을 원칙과 정도에 따라 당초 계획대로 추진키로 방침을 정한 후, 김유혁 금강대학교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도청이전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추진위원회에서는 전문가와 지역대표 등 66명의 평가위원을 위촉하고 위촉받은 평가위원들은 2006년 2월 9일부터 4일간에 걸쳐 후보 지역에 대한 평가 지표와 가중치에 따라 논산 상월지구, 청양청남지구, 보령 명천지구, 홍성 홍북지구,당진 면천지구, 아산 신창지구 등 6개 후보 지역에 대한 평가 작업을 실시하였다.
평가 결과, 2월 12일 예산군 삽교읍 일부가 포함된 홍성군 홍북지역이 평가위원들의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도청 이전 예정지로 선정하였다. 대전직할시 분리 이후 17년 만의 일이었다.
논란도 많았고 관심도 컸으며 평가과정에서 혹시나 잡음이라도 발생하여 승복하지 않는 분위기라도 조성되면 어쩌나 염려하며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였다.
도청 이전본부 전 직원들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 예정지가 결정된 바로 이튿날인 2006년2월13일 심대평 도지사는 도청이전 예정지역 확정에 따른 특별담화문을 발표하였고, 지역 언론에서는 이를 대서특필, 특집 방영 등으로 크고도 폭넓게 보도하였다.
김 용 교(前 충남도정책기획관/前 아산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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