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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자기 결정권(自己 決定權)

박대건 노사발전재단 충청지사장

방원기 기자

방원기 기자

  • 승인 2026-07-28 16:08

신문게재 2026-07-29 19면

박대건 노사발전재단 충청지사장
박대건 노사발전재단 충청지사장.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인간이 자신을 자유롭다고 믿는 이유는, 단지 자신의 행동은 자각하지만, 그 행동을 결정짓는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며 인간의 자유의지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명상록'에도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주가 처음 탄생할 때부터 너를 위해 실로 짜여진 것이다."라며 운명 결정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문장 속의 '너를 위해'라는 표현이 마음의 위안을 다소 갖게 하지만(특히 나 같은 낙관론자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인간의 운명(행동)이 어쩔 수 없이 '어떤 그 무엇'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두려움과 답답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결정론적 입장은 고대 로마에서 17세기,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면서 비결정론적 입장과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립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경제·제도는 '비결정론적 입장'을 기본 전제로 하고 결정론을 아주 보완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이러한 대립과 보완은 법의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특히 형법의 책임론 영역에서는 확연하다. 법이 범죄자에게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범행의 실행에 있다고 보는 것(비결정론적 입장)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다만 이러한 '행위 책임 있는 곳에 형벌 있다'는 일반 예방적 형벌론을 보완하여 유전적·정신적 소질이나, 환경의 영향 등을 양형에 참작하거나 보호관찰(치료감호) 등의 처분을 병과하고 있다.

우리 헌법과 노동법도 기본적으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그것을 법의 이념적 근간으로 삼고 있다. 헌법 전문의 '자율과 조화' 등, 일반적 행동의 자유(헌법 제12조), 거주·이전의 자유(같은 법 제14조), 직업선택의 자유(같은 법 제15조), 학문·예술의 자유(같은 법 22조), 자주적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같은 법 제33조) 등이 그러하고, 헌법의 하위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조의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제2조의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라는 문구, 제5조의 근로자의 '자유로운 노동조합 조직·활동' 등이 또한 그러하다.

이 외에도 수많은 법률이 '자기 결정권'이라는 근본 이념을 구심점으로, 마치 은하계의 중심을 축으로 삼아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운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기 결정권'은 어떻게 보장되는 것인가?

이 문제는 아침 운동 길에 발에 걸리적거리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걷어치우듯 해치울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는 인간이면 누구나 당연히 보장받는 것이다. 이것을 헌법학자들은 '기본적 인권'이라고 표현한다. 생명권, 인격권,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성적(性的) 자기 결정권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기본권은 법에 명시하지 않아도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법과 제도에 의해 보장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를 '제도적 보장에 의한 기본권'이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에는 재산권, 선거권, 공무 담임권, 재판권 등이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인 것 같다.

요컨대 당연히 인정되는 권리와 제도적으로 보호되고 보장받는 권리 어느 것이나, 결코 '자기 결정권'을 배제하거나 박탈해서 보호될 수 있는 기본권은 없어 보인다. 기본적 인권은 인간의 존엄과 그 존엄에 대한 절대적 표지로서의 자유로운 생각·선택·활동 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는 이러한 기본권의 보장에 대한 헌법적 책무가 있고, 그 책무를 다하는 것이 국가 존재 근거가 된다.

대기층에서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는 오가면서 대류 현상을 만들고 지구의 대기 순환을 돕는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상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와 더운 공기가 급속도로 빠르게 갑자기 충돌하게 되면 천둥·번개를 동반한 이상 기후 증상을 보이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으로 이룬 풍요와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생각들이 발현되고 있다. 이는 대류 현상처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갑자기 충돌하면 그것은 사회적 진통과 손실로 나타나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역사상 80∼90회의 큰 전쟁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자랑스러운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우리 국민의 '위기 극복의 지혜'와 '협동 정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대건 노사발전재단 충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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